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2) 춘일(春日)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2) 춘일(春日)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7.0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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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못물 새롭게 불어 원앙새 녀석이 멱을 감네

가을걷이는 겨우살이가 충분하여 먹지 않아도 먼저 배가 부르다. 그래서 겨울은 휴면기이고 다음 농사를 짓는 준비기간이라고 한다. 이는 농사가 넉넉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춘궁기 또는 보릿고개란 말이 있다. 겨울곡식을 다 먹고 나면 춘분(春分) 이후 해가 길어지면 봄에 먹을 곡식을 미리 걱정해야 된다. 이때를 넘기기가 가장 어렵단다. 자연은 봄을 재촉하여 장관을 이루지만 시름에 겨운 서민들은 해 길어짐을 원망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日(춘일) / 아계 이산해

비온 뒤에 꽃가지는 낮은 담 뒤 덮었고

작은 못물 새로 불어 원앙새 멱을 감네

시름에 겨운 사람들 해 길어짐 원망하네.

雨後花枝覆短墻      小塘新漲浴鴛鴦

우후화지복단장      소당신창욕원앙

愁人無意鉤簾看      只怨春來日漸長

수인무의구렴간      지원춘래일점장

 

작은 못물 새롭게 불어 원앙새 녀석이 멱을 감네(春日)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비 온 뒤에 꽃가지는 낮은 담을 뒤덮었고 / 작은 못물 새롭게 불어 원앙새 녀석이 멱을 감네 // 시름 잠긴 사람일랑 발을 걷고서 보지는 않고 / 봄 들어서 해가 점점 길어진 걸 원망하고 있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어느 봄날]로 번역된다. 아계는 서화와 문장에 뛰어났고, 선조 대 조선 팔문장의 한 사람이다. 아계의 부친이 나라의 사신으로 중국 산해관(山海館)에 투숙한 적이 있다. 그 때 부인과 동행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잠자리에 드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집에 있던 아계의 모친과 똑같은 태몽으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이산해’라고 지었다 한다.

시인은 어느 봄날에 새로운 움을 틔운 몸부림을 보았던 모양이다. 비 온 뒤에 축 쳐진 꽃가지는 나지막한 담 위를 뒤덮으니 힘없이 보였다. 그런 가운에 원앙새 한 쌍이 부지런히 멱을 감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리. 시름에 잠긴 사람들은 구경하지도 못하고 보릿고개 때문일까 배고품을 달래기 위해 해가 길어짐만 원망하고 있음이란 밑그림을 그려냈다.

화자는 비 맞은 꽃가지는 낮은 담을 뒤덮고 한가한 못물에 원앙새가 멱을 감는 봄날의 풍경이란 시상을 덧칠한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에 급급한 필부필부들은 이런 자연 현상을 보지 못하고 길어진 해에 보릿고개 넘길 일을 근심하며 봄을 원망하고 있음을 표출해 냈다. 봄날의 활기참과 맥없는 시름을 잘 대비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꽃가지 낮은 담 뒤덮고 원앙새 멱을 감네, 시름잠긴 사람 발 걷고 보지 않고 지는 해 원망하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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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3부 外 참조]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북인의 영수로 정권을 장악하여 1590년 영의정이 되고,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591년 건저문제로 아들 이경전으로 하여금 정철을 탄핵하게 하여 그를 유배 보내었다.

【한자와 어구】

雨後: 비 온 뒤. 花枝: 꽃가지. 覆: 덮다. 短墻: 낮은 담. 小塘: 작은 못물: 新漲: 새로 불다. 浴: 목욕하다. 鴛鴦: 원앙새. // 愁人: 시름에 잠긴 사람. 無意: 보지 않다. 뜻하지 않다. 鉤簾看: 주렴을 걷고 보다. 只: 다만. 怨: 원망하다. 春來: 봄이 오다. 日漸長: 해가 점점 길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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