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식 이모저모] 그날의 상처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5.18기념식 이모저모] 그날의 상처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8.05.18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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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찾은 추모객들 이야기

[시민의소리=김다이 기자] “38년 전 슬픔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칠흑 같던 어둠속에 신군부와 계엄군은 광주의 평화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수백 명의 광주시민들은 민주화를 위해 희생됐고, 유가족들의 슬픔은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다.

3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난 이후 묘지 곳곳에서 오열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80년 5월 27일 시민군의 최후 항전지인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게 희생된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 씨는 “그날 이후에도 신군부는 '유족들은 앞장서지 말라'고 탄압을 했다”며 “폭동이라고 처음에는 장례비도 못 받았고 뒤늦게야 적은 돈을 받았다. 전두환, 노태우때까지 탄압은 계속됐다”고 떠올렸다.

추모객들은 이정연 열사 어머니 구선악 씨를 둘러싸고 “정부에 청원을 넣고 유가족들이 앞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힘내라”는 등 위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5.18기념식 당일에 국립5.18민주묘지를 처음으로 방문한 고연희(50대·서울) 씨는 “오늘 기념식 공연에서 실제 유가족이 나와서 자식을 찾는다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나왔다”며 “돌아오지 못한 자식을 찾는 것은 포기를 했지만 기념식 자리에 참석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5.18역사에 대해 폄훼하는 단체 카톡방이 있었다는 현혜진(50대·서울) 씨는 “5.18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로 내가 직접 확인한 바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직접 와서 보니 실제가 맞았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절한 현장이었구나 생각했다. 헛소문들은 사실이 아니었고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현장에 와서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단톡방에는 사진을 찍어 보내 직접 해명을 해놨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청소년들의 참석도 눈에 띄게 많았다. 기념식에 참석한 김현지(살레시오여중2) 양은 “당일에 직접와서 보니까 친구들도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다”며 “학교에서도 5.18관련 수업으로 희생자들의 영상을 보여주곤 한다. 기념공연에서 자식을 찾는 절절한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소감을 밝혔다.

땅끝마을 해남에서 온 박유빈(해남고1) 군은 “5.18민주화운동은 헌법수호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며 “5.18의 역사를 폄훼하는 사람들은 좀 제대로 5.18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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