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 김광호 여양고등학교 인문사회부장
  • 승인 2018.05.17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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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은 순응과 조화라는 질 높은 바퀴를 달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종종 TV에서 동물의 생태를 본다. 그들의 생활 터전은 평온한 평야이다. 많은 동물들은 그 평야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 평온한 들판에 사자의 무리들이 나타난다. 큰 눈망울을 지닌 사슴의 무리들은 한가하게 풀을 먹고 있다. 갑자기 생존의 법칙이 시작된다.

사자는 좇고 사슴은 달아난다. 마침내 사자의 입과 사슴의 눈망울로 클로즈업된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보며 약육강식이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그러면서 승자독식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살벌한 자연 세계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동물의 세계가 정말 살벌할까? 정말 약육강식의 세계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승자독식의 장(場)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아니다. 잠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고사성어를 살펴보자
 
가정(苛政)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한다. 이로 인하여 백성에게 미치는 피해는 잔인한 사자나 무서운 표범의 해보다 더 크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주(周)나라의 천자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지방의 봉건 제후들이 힘을 키우면서 하극상을 일으키는 혼란기였다.

그러다보니 국가는 백성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지 못하고 패권만을 다투었다. 이런 상황에 일침을 가한 일화가 바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사납다)의 고사이다.

잠깐 원문을 음미해보자. 이 고사는 예기(禮記) 단궁(檀弓), 공자가어(孔子家語) 정론해(正論解)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태산 옆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 하나가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를 잡고 듣고 있다가 제자인 자로(子路)를 시켜 그 연유를 묻게 했다. “부인이 우는 것이 심히 깊은 근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孔子過泰山側, 有婦人哭於墓者而哀. 夫子式而聽之, 使子路問之, 曰, 子之哭也, 壹似重有憂者.) 
 
부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죽었고, 남편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아들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왜 떠나지 않았습니까?” 하고 공자가 묻자 부인이 대답했다.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공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명심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而曰, 然. 昔者, 吾舅死於虎, 吾夫又死焉, 今吾子又死焉. 夫子問, 何爲不去也. 曰, 無苛政. 夫子曰, 小子識之, 苛政猛於虎也.)
 
'가정맹어호'를 재해석해보자. 가혹한 정치는 호랑보다 무섭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옛날에는 탐관오리나 폭군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지하고 탐욕에 찌든 지도자가 있다. 그들의 정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렀는가?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나날을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이룰 정도로 음주색(飮酒色)에 빠졌다. 또한 혹독하게 세금을 징수했으며 백성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대했다. 나라를 걱정하여 상소를 올리는 충신(忠臣)은 통째로 굽고 지지는 형벌로 다스렸다.

그래서 맹자는 역성혁명의 타당성을 역설한다.“무왕이 주왕을 내쫓거나 죽인 것은 신하가 군주를 죽인 것이 아니라 인과 의를 해치는 무도한 사내를 처벌한 것이다”라고 맹자는 말한다.

이렇듯 나쁜 정치는 몇몇의 백성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아니라 많은 생명을 불사른다. 사람들이 말했던 나쁜 호랑이나 사자는 기껏해야 생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동물을 죽인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잘못된 정치로 300명이 넘는 학생과 어른이 참사(세월호)를 당했으며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를 셀 수조차 없다.

이렇듯 잘못된 정치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고 국민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러다보니 공자는‘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고 했으며 맹자는‘정말 폭군은 백성의 힘으로 갈아치울 수 있다’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래도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을 약육강식이니 승자독식을 추구하는 나쁜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처럼은 살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동물처럼“순응과 조화라는 질 높은 바퀴”를 달고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다.

과연 우리 인간에게 그러한 지혜와 용기가 있을까?    

 따가운 햇살 사이로 산들 바람은 불고/여정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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