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5) 자영(自詠)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5) 자영(自詠)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5.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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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엔 나풀나풀 쌓인 꽃잎들만 초롱초롱

흔히 남의 잘못은 잘 들추어 말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것을 잘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못난 과거를 뉘우치는 일은 어렵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왜 그런가? 내 잘못이 너무 컸구나’하면서 자기를 되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다. 벼슬에 임명되었어도 한사코 뿌리치고 외딴 곳에서 혼자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읊었던 율시 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自詠(자영)[1] / 송암 권호문

모난 성격 홀로 있어 고상함을 지키고

텅 빈 골짜기에 집 짓고 혼자 살아 

숲속에 맑은 새소리 꽃잎 쌓인 섬돌에.

偏性獨高尙    卜居空谷中

편성독고상      복거공곡중

囀林鳥求友    落砌花辭叢

전림조구우      낙체화사총

섬돌엔 나풀나풀 쌓인 꽃잎들만 초롱초롱(自詠1)으로 번역해본 율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1532~158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모난 성격인 나 홀로의 그 고상함만 지켰다가 / 이제는 텅 빈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오 // 숲속에는 벗을 찾는 새소리만이 맑은데 / 섬돌엔 나풀나풀 쌓인 꽃잎들만 초롱초롱]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자신을 보며 읊음1]로 번역된다. 서애 유성룡이 권호문에게 보낸 글 한 편이 전한다. ‘도(道)를 배우자니 힘도 부족하고, 출사와 은거의 갈림길에서 근심거리만 많다 하네. 모두들 경세제민에 몰두하고 있지만, 권호문 그대는 속세를 떠나 맑게 거처하고 있음에 부럽다고 하겠지’. 권호문 생활을 한 마디로 평한 말이다.

시인 자신이 말했듯이 자신은 모난 성격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모난 성격인 나 홀로의 그 고상함만 지켰다가 이제는 텅 빈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했다. 임금이 벼슬을 내려도 마다하고 텅 빈 골짝에서 집을 짓고 산다. 새 소리도 맑고 섬돌엔 쌓인 꽃들만 가득하고…

화자의 모난 성격 때문에 고상함도 지키고 골짝에 집짓는 한가로움을 맛본다. 새소리는 벗을 찾고, 꽃잎도 나풀거려 한가로운 화자의 문학적 상상력을 만난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주렴드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 / 옷깃 풀어헤치니 시원한 냇바람 // 일없이 청아한 한 수 시를 읊으니 / 구절구절 참 이렇게 한가로울 수 없네]라고 했다. 시제가 말해주듯이 시인의 한가로운 생활을 음영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나 홀로 고상함 지켜 골짜기 집 살고 있네, 숲속 벗 찾아 새소리 맑은데 섬돌 잎만 초롱초롱’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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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1532~1587)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 학자이다.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모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에 무민재를 짓고 은거하였다.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다.

【한자와 어구】

偏性: 모난 성격. 특출한 다은 성격. 獨: 홀로. 유독. 高尙: 고상하다. 고상함을 지키다. 卜居: 집을 짓고 살다. 좋은 집터를 잡아 살다. 空谷中: 빈 골짜기 가운데에. // 囀: 지저귀다. 林鳥: 숲 속의 새. 求友: 같이 놀 벗을 찾다. 落砌花: 섬돌에 꽃이 떨어지다. 辭叢 떨기 되어 나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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