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야기(2)
베트남 이야기(2)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8.05.08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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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베트남 이야기를 쓰는 가운데 「왜 호찌민인가?」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의 저자 송경필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치과의사로 그 자신의 소개에 의하면, 그는 일행 4명과 함께 2008년 9월 11일부터 22일까지 베트남을 답사했다. 답사 안내자로 1965년도 호찌민 장학생으로 북한에 유학한 비엣 선생을 만났고, 그를 통해 호찌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단서가 되어 책을 쓰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근래에 접한 많은 젊은 학자들의 저술에서 배움과 영감을 얻어 온 필자는 송경필 치과의사가 전하는 베트남 역사와 호찌민의 인품에 더할 수 없는 감명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노년의 배움에 쑥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생전에 하나라도 더 알게 되었다는 즐거움이 크다. 그만큼 저자에 대한 감사함도 크다.

송경필이 참여해 2000년에 결성한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단’은 2002년 ‘베트남 평화의료 연대’로 명칭을 바꾸고 ‘청년 한의사회’의 한의사도 참가하여 지금까지 해마다 베트남 중부지방에서 진료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진료단의 일원으로, 또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해마다 베트남을 방문하며, 갈 때마다 민족통일 과정의 역사적 고난과 감동적인 교훈을 기록하여 모아왔다고 한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나는 사랑에 빠진 소녀가 꽃밭에 숨듯이 호찌민과 그 인민의 산속에서 맑고 숭고한 영혼에 흠뻑 빠졌다’고 술회하며,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여 ‘한반도만이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현실을 우리는 정직하게 부끄러워하자’고 독려하고 질책하면서 아픈 심사들을 헤집는다.

심통 난 마음으로 넋두리하자면 부끄러워한다고 분단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고, 분단이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도 아니고 역사의 내외 조건이 씨줄 날줄로 엮어진 결과가 한반도 우리의 분단현실임을 귀띔한다. 그러면서도 분단에서 우리 자신들이 전적으로 면책될 수 없었음을 피력하면서 “정직하게 부끄러워하면”, 그리고 그러한 마음들이 쌓이고 뭉쳐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 된다면 분단 극복의 역량이 될 수 있음을, 감상적이라고 질책을 받을지라도 자발적으로 수긍하고 싶다. 아무튼 분단은 지겹고, 싫고 분단을 지속시킬 것을 꼬드기는 세력과 인사들 또한 싫다.

거듭 밝히지만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우리가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베트남 출병이 부끄럽고, 그것을 국위선양으로 호도했던 인사들의 파렴치가 밉고, 맹호부대 용사, 청룡부대 용사,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읊조리면서 젓가락장단으로 기분 냈던 젊은 날의 술집 추억마저 부끄럽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개인사적 맥락으로, 역사적 사정으로 제국주의자들의 소행을 용인하고 침략을 두둔하고 학살을 변명했던 젊은 날의 어느 한 때의 기억이 파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다. 그러면서도 그런 어느 한 때가 모이고 쌓여서 삶이 되고 역사가 되었음을 불가피하게 승인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시공간의 체험은 사죄와 반성만이 출구임을 확인한다. 동시에 피해자들이 보여주는 관용이 관세음보살의 후광처럼 빛나고 고맙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이 손오공의 악행을 구한 보살행은 삼장법사의 수행이 전제되어 있었고, 삼장법사는 인간 구제를 위한 경전이라는 법보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이미 저질러져버린 악행을 없는 것으로 해버릴 수 있는 방법은 타임머신이 없는 인간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 어떤 방식, 어떤 수준으로든 보상되어야 하고 사죄하여야 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프랑스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모든 가해자들은 사죄해야 한다.

1968년 3월 16일, 해가 뜨자마자 미군 180여 명을 태운 헬기들이 미라이마을에 착륙했다. 그때 마을에는 젊은 남자는 한 명도 없었고 노인과 아녀자, 어린아이들뿐이었다. 미군은 마을을 뒤지는 과정에서 임신부와 어린 소녀들까지 모든 여자를 강간했다. 그런 뒤 마을주민을 길거리로 끌어내어 사살하고, 모든 집을 불태우고, 민간인 504명을 학살했다. 이 확실한 증거는 1969년 12월에 뉴욕타임스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학살하는 동안 미군들은 그 학살을 즐겼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베트남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탄타오는 ‘과거를 잊을 수 없더라도 과거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베트남에는 반미정서가 없다고 말한다.

어처구니없게 놀란 가슴은 베트남에 영광 있으라 하는 축복으로 절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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