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야기(1)
베트남 이야기(1)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8.04.26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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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죄악은 사과로 면죄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년 4.3사건을 추념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했고, 지난달 23일에는 베트남을 방문해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사과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과 발언을 하였다.

한국베트남평화재단은 한국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시위와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김영란 전 대법관이 중심이 된 시민평화법정은 베트남학살 피해자들이 요청한 학살사건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금 지급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위안부문제로 일본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우리들은 베트남에서 저지른 우리의 가해행위를 사과로 얼버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의 몰염치와 무도함을 본받는 것은 천만부당하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조치에 솔선해 나서야 할 것이다. 과거의 적폐 권위정부와 비교하면 한국의 민주정부의 사과조치는 그 자체 괄목할만한 진전이지만, 무늬만의 사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응분의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4월 21~22일 열렸던 시민평화법정은 1968년 베트남 중부 광남성에 위치한 퐁니, 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 사건이다.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는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50주년을 추념하는 그의 칼럼에서 구수정 박사가 전한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학살을 소개하였다. 한국군인의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에 달하며 꽝남성에서만 4천여 명, 총 5개성에서 9천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고태경 한겨레기자는 학살을 다룬 그의 책에서 입에 담기도 끔찍한 소문을 기록한 뒤,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948년 제주 4.3사건으로부터 20년이 흐른 뒤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12년 남겨둔 때였다. 1968년 2월 12일의 베트남은 제주와 광주의 중간에 놓였다. 그날 오후 2시께 퐁니, 퐁넛촌에서는 제주 4.3사건의 시간이 재현되었다. 19살 응우옌탄은 옷이 벗겨진 채 논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두 가슴은 난도질당해 피가 흘렀다. 왼쪽 팔도 마찬가지였다. 20년 전 제주에 들어온 토벌대원들처럼, 12년 뒤 광주에 투입될 공수부대원들처럼, 마을에 들어온 해병대원들은 포악했다. 과거의 토벌대원들과, 미래의 공수부대원들과, 오늘의 해병대원들은 생김새가 닮았고 같은 언어를 썼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한국 군인들이었고, 한국의 군사정권이 보낸 자들이었고, 미국의 용병들이었다.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우리들은 “청룡부대 용사들아”, 맹호부대 용사들아“를 외치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호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민평화협정의 재판부인 김영란 대법관은 말한다. “베트남에 관광 가시는 분들 많잖아요. 사실 베트남을 한반도 안 가봤어요. 마음이 편하지 않아 관광을 갈 수가 없더라구요.”

필자도 10여 년 전 5.18기념재단 이사들과 함께 하노이에 가서 하노이대학 교수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베트남 교수는 그것이 미국의 탓이지 한국의 책임은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는 말로 한국군이 용병으로 왔음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 부끄러움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을 자부하면서 그 흰옷까지도 평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애들 문자로 심쿵 하였는데, 그 자과감이 해소될 길이 없었다.

학살의 역사는 그것만이 아닌 것을 역사는 또 다른 장면들을 상기시켜 준다. 보도연맹학살사건, 여수․순천민간인학살사건, 한국전쟁 전후로 전라도, 경상도만이 아니라 전국 도처에서 자행된 학살사건은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파노라마로 우리들의 정신과 육신을 짓누른다. 한국 사람들 탓이 아니야. 전쟁 탓이야. 아니 우리 인간들이 본디 갖고 있는 야수성 탓이라고 탓할 수 있는 모든 근거를 동원해 보지만, 인간인 것까지 부정하고 싶은 자괴감을 감당할 길이 없다.

그런데 무자비한 학살명령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안보라는 이름으로,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명령을 내린 자들을 우리들은 아직도 기리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당시 베트남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을 뿐인데, 우리 군대는 미국에 간청해서 용병이 되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게 슬프다. 배상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한 것이라도 학살의 죄닦음을 반드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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