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의 딸이 어떤 인터넷 매체에 여행기를 연재했다. 그런데 댓글에 ‘무슨 돈이 있어 세계 여행 다니느냐, 된장녀야.’ ‘얼굴치고는 메주 같이 생겼는데.’ 하는 댓글들이 달려서 당사자가 너무 상처를 받아 얼굴에 뾰루지까지 났다고 들었다.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될 것을 그런 악플을 달아 글쓴이를 능욕하고 폄훼하다니.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 못 담그랴.’는 속담도 있긴 하지만 댓글은 구더기 수준이 아니다. 댓글은 인터넷의 독소(毒素)다. 독사에 물리면 해독제라도 있지만 댓글에 당하면 답이 없다. 탤런트, 배우, 유명인들 중에 댓글에 상처를 입고 자살한 이들도 있다. 지금도 댓글 때문에 상처와 피해를 입는 사람, 기업 들이 생겨나고 있다.
말이 좋아 댓글이지 90퍼센트는 악플이이라고 볼 수 있다. 한때 선플 운동을 벌인 일도 있었으나 다 헛수고로 돌아갔다. 미국에선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에게 유리한 가짜뉴스, 댓글들을 무차별적으로 달아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서 지금 특검 중이다.
트럼프 측근이 러시아측과 대선 기간에 접촉했다는 것인데 트럼프가 이 때문에 곤경에 처해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 국정원, 기무사 같은 국가기관이 댓글조작을 한 것으로 드러나 전, 전전 국정원장들이 줄줄이 구속 중이다.
댓글 조작은 일종의 야바위 짓이다. 옛날에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사람들을 동원해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처럼 연출하면서 장사하는 경우가 흔했다. 멋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휩쓸려 안 사면 손해라도 볼 것처럼 냉큼 사가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행태가 인터넷으로 옮겨온 셈이다. 더 지능적으로 더 진짜처럼 진화해서 사람들을 속인다.
20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 어떤 청년이 전화 부스에서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길래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가 좀 짜증을 냈더니 지금 자기가 여기저기 전화 여론조사에 특정 업체 알바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신기해하던 일이 떠오른다.
인터넷이 생겨서 세상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그 실상은 나빠졌다고 봐야 할 평가가 51퍼센트는 넘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댓글조작은 글 작성자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때로는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데 정성을 모으는 댓글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서운 것은 댓글만이 아니다. 해킹은 댓글보다 몇 배나 더 피해가 크다. 러시아, 중국, 북한의 해킹 부대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평창올림픽 때 잠시 인터넷이 먹통되어 진행에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었는데 러시아 해커가 훼방을 놓았다는 미국 측의 분석이 최근 나온 바 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곳이면 어느 곳이던 그것이 국방 기밀이던 상품 제작 노하우든 은행이든 해킹으로 원하는 정보를 털어간다. 이제 복면강도가 총을 들이대고 ‘빨리 돈을 자루에 담아라’ 하는 짓은 옛날 영화에나 나오는 아날로그 버전이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신문사가 적대국에 해킹을 당해 신문사의 모든 자료를 털어 가버려 다시 복구하느라 몇 십억 원이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면 해킹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인가. 이것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아무리 단단한 방어 프로그램으로 담을 쳐도 이것을 뚫고 들어가는 창이 곧 생겨난다.
사실상 인터넷에 연결된 것은 그것이 은행의 돈이든, 국가기밀이든, 연구소든 해커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끔찍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댓글 이야기로 돌아와서, 최근 드루킹인가 뭔가 하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지난 대선에 댓글 조작을 했다며 지금 정국이 와글와글하다. 여당의 핵심인사가 연루되었다는 둥 일파만파로 의혹이 커져나가 국민적 관심사고 되고 있다. 그 진상이야 검경에서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드러난 것만으로 볼진대 어느 특정 정당이나 인물의 팬 수준을 넘어서는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모르긴 해도 훨씬 더 많은 댓글 조작단이 있지 않았을까.
여기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인터넷 포털이나 신문에 댓글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것이 대체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댓글 문제는 그 폐해가 커서 실명제로 하자는 여론도 있었으나 헌재에서 위헌이라고 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댓글은 포털에 돈 벌어주는 일 말고는 우리 사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는다.
드루킹은 매크로 기계를 돌려 순식간에 댓글 조회수를 크게 올려 인기 댓글 1위로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기술적으로 한 사람이 누른 ‘좋아요’에 순식간에 7만개의 ‘공감’ 조작도 가능하다고 하니 SNS 댓글에 놀아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적폐청산 목록에 댓글폐지도 올려놓았으면 한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두 번 거짓말했다가 세 번째 때 늑대가 진짜로 나타나 양을 다 잃었다지만 인터넷 댓글조작은 수만 번을 조작해도 거의 발각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댓글은 양념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