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와 함께한 날들
해피와 함께한 날들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12.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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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는 새해 13살이 된다. 강아지 세상에선 나이가 많이 든 폭이다. 어린 새끼 때부터 일고여덟 살까지는 그렇게도 예쁘고 귀엽던 해피가 지금은 세월의 시달림에 들볶여 걸음걸이도, 눈빛도, 털 빛깔도 활력이 떨어지고 잘 움직이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변함없는 것은 내가 바깥에 나갔다 올 때면 현관에 나와 멍멍 짖어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했으니 그냥 반갑다고 꼬리만 흔들어주어도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해피는 곧 자지러질 듯이 소리쳐 짖는다. 짖다가 쓰러질 것만 같아 얼른 안아준다. 제발 좀 짖지 말라니까. 너무 힘들잖아.

해피는 여기저기 아프다. 천식을 앓고 있고, 심장도 좋지 않고, 다리도 부실하다.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자리에 앞발을 내뻗고 바닥에 턱을 붙인 채 엎드려 있다. 이따금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귀를 세웠다가 내렸다가 한다. 그런 해피가 측은해 보인다.

우리 가족과 오래 같이 지낸 터라 피붙이처럼 여겨진다. 어디 나갈 때는 해피만 집에 놓아두고 나가야 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해피야, 올 때 맛있는 것 사다줄게.” 그런 약속을 하고 소시지 같은 것을 사온다.

개들은 옛날 사냥하던 시절부터 한 자리에서 이틀분의 먹이를 먹는다고 한다. 다음날 사냥감을 못 구할 수도 있을 것에 대비해 그렇단다. 해피도 수만 년 전 그들 야생 선조의 버릇대로 주는 대로 실컷 받아먹는다.

해피가 먹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사람과 공존하기가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해피는 사람의 귀여움을 받는 법을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우선 집에 들어갈 때 반기는 모습은 내 뇌에서 엔돌핀이 절로 넘쳐 나오게 한다.

뿐인가. 내 품에 안겨들어 손등을 핥고 얼굴을 핥고 심지어는 입맞춤까지 하려든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내가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한다든지, 일을 볼 때면 으레 화장실 앞에 앉아서 마치 경호원처럼 나를 지키고 있다.

왜 그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하여튼 내가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봐 그러는지 그렇게 꼼짝 않고 버티고 있다. 필시 나를 도우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애완견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것은 인간 쪽에서 강아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이 은연중 내재되어 있는 표현이다. 해피는 가족이다. 다만 사람 모습과는 달리 강아지 모습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해피에게 인권에 버금가는 동물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대한 가족과 똑같이 대하려고 한다. 내가 간식을 먹을 때는 해피에게도 간식을 나누어준다. 같이 산 지가 오래되어 해피는 내가 하는 말을 거의 다 알아듣는다.

저리 가, 이건 네가 먹으면 안 돼, 목욕하자, 같은 말에 척척 알아서 행동한다. 어쨌든 나는 말 못하는 짐승이라며 해피를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밤에 잘 때는 내 침대에서 같이 잔다.

해피가 얼마나 촉이 빠른 녀석인가는 아파트단지에 아내의 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가 거실 벽의 스크린에서 날 때면 벌써 짓기 시작한다. 택배 배달하는 사람이 현관 문 앞에서 벨을 누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주 사납게 짖는다. 제 밥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그런 해피이긴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은 짠하게 느껴진다. 어쩔 것인가. 나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것은 나도 어떨 수 없는 저 우주의 법칙인 것을. 이럴 때 보면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이 너무 냉랭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강아지와 함께 지내는 데는 어느 정도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먹이를 주어야 하고, 대소변을 치워야 하고, 목욕을 시켜주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백신을 접종해줘야 하고, 그리고 아프면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그런데 동물병원에 지불하는 의료비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사람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고 할 만큼 부담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 아픈데 돈이 많이 든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능한 한 최대로 보살펴준다.

왜 한갓 강아지에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대하는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사람도 살기 힘든데 강아지한테 그렇게 하는 것은 과분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고깝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다 대고 “강아지는 우리집 가족이랍니다.” 라는 말은 이해되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나는 그저 인간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유지시켜 주는 동기부여를 강아지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는 상처받기 쉽고, 배반, 가식이 끼어들 여지가 있지만 해피와의 사이에서는 오로지 사랑과 충직만이 있을 따름이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에 그리 눈 밖에 날 일인가.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이 세상에서 동물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진다’고. 그들이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말을 못한다고 해서 학대받아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나는 믿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이 만년에 개와 함께 미국 50개주를 여행한 책을 쓴 일이 있다. 그때 그는 개를 동물이 아니라 작가의 절친한 친구로 대했다.

참, 간밤에 해피가 쿨쿨 자는 중에 몇 번 컹 컹 짖어댔다. 어쩌면 해피의 꿈속에 내가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장면이 있었던 것일까. 해피는 꿈속에서도 나를 반기는 것 같다. 당신도 새해에는 새 가족으로 강아지를 입양해보면 어떨까. 가족을 더욱 화목하고 단란하게 해줄 복을 받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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