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떨리게 하는 '학부모'라는 입장
나를 떨리게 하는 '학부모'라는 입장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디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같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낸 아이엄마로부터 느즈막한 오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숙제 비슷한 것에 대한 확인전화로 아이가 제대로 전달을 하지 않아 아이를 잡았다면서 우리집 상황은 어떤지 알아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 숙제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기억을 더듬어 대충 오리엔테이션의 내용들을 짚어주고 괜히 아이 잡지 말자며 잔뜩 화가 치민 아이엄마를 달래 전화를 끊었다.
그리나 전화를 끊고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에게 살살 달래며 내가 물어본 것은 그 숙제라는 것에 대한 추궁이었다.
천연덕스럽게 전혀 모르겠다는 아이의 대답에 뭔지 모를 불안감이 순간 확 덮쳐왔다.

이런 불안감을 시작으로 그 후로 종종 학부모(?)라는 입장에서 나를 가슴 떨리게 하는 경험들은 몇차례 계속됐다.
유치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선생님이 쓰는 아이들의 유치원생활에 대한 글에서 아이녀석에 대한 글이 하루, 이틀 빠질 때 혹은 '누구 엄마 간식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류의 글을 읽을 때 이미 다잡았다고 여겨지는 마음이 흔들렸다.

이제 겨우 한달을 넘긴 유치원에서 아이가 혹시 선생님의 관심밖으로 벗어난 것은 아닌지 혹은 유치원에 뭔가 표시를 해야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망설임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그런 흔들거림이 올때마다 나에게 거는 주문은 내 아이가 특별해지기 원하는가하는 질문이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특별히 사랑받기를 원하고 아이가 친구들의 관심을 얻는데 함께 노는 경험에서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 의해서이기를 바라는지를 묻는 것이다.

아직은 이런 주문들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언제가 이 정도의 주문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날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또 뒷덜미를 잡는데 이건 또 뭘까!

유치원이라는 공교육기관에 아이를 보낸지 이제 겨우 한달이 넘은 것인데 만약 초등학교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단지 순간의 불안감으로 끝나지 않을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이제보니 아이가 태어났던 시기도 이러했던 것 같다.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젖은 어떻게 먹어야하는지, 열이 오를 때 어떻게 해줘야하는지 몇번을 확인했어도 불안했던 그 시기와 비슷한 것 같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 6살짜리 내 아이가 아파도, 생때를 써도 겁부터 집어먹지는 않지만 공교육 문턱앞에서 거치게 될 시행착오는 어떻게든 꼭 피하고 싶다. 갓난쟁이 아이는 엄마가 헤매는 동안 배고프거나 몸이 아팠지만 초등학생 아이는 마음부터 다치지 않을까 하기 때문인데 '좋은 엄마되기 학교'가 있기를 바란 것처럼 '현명한 학부모되기 학교'가 있다면 꼭 가볼 작정이다.

물론 몇 년안에 세상이 변한다면 이런 마음고생이야 추억으로 삼거나 잊어버리면 그만인데 작년에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정말 가기 싫었는데 어떡해. 일단 엄마가 학교에 다녀오면 아이한테서 벌써 다 표가 난다는데.. 나두 가서 봉투 찔러드렸거든. 근데 정말 표나더라....... 너두 어쩔 수 없을거야."

제발 소원할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순간에 부딪히지 않기를..
방법은 이렇게 불안한 엄마들부터 팔 걷어올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 말고는 없는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