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을 깨부셔야죠"
"유리천장을 깨부셔야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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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직장협의회 동구지부 반명자 부회장

공무원 노조 출범식에 참가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장 상사에게 '미××, 정신병자, 또××' 등의 치욕적인 욕설을 들어야만 했던 사람이 있다.(본지 4월 1일자 참조) 광주시 동구청 환경위생과 반명자씨(45·공무원 직장협의회 동구지부 부회장).

만약 반씨가 남성이었다 하더라도 이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반씨는 24년동안의 공무원 생활을 되돌아 보며 "아니다"고 단언한다.
"구청 전체 분위기가 봉건적이고 보수적이예요. 자기 일은 열심히 하는 반면 남자든 여자든 일부러 앞장 서서 튀려하지 않으려 하죠. 이런 곳에서 여직원이 소리를 내면 지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지고 있다.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남직원들은 슬쩍 넘기는 반면, 여직원의 실수는 항상 큰 소리가 나기 마련이었다고. 뿐만 아니라 출산 휴가 등으로 인한 공백은 이후 생활에서 압박으로 작용해 끝내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들은 직장을 떠나면서 한결같이 '후배들만큼은 평등한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여직원들 차별 일상화…업무 처리, 인사 등
남성비해 올라갈 길 뻔히 보이는 투명유리


동료들의 이같은 목소리가 쌓여 가면서 반씨는 이런 불평등을 언제까지나 마음 속으로만 삵히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섰다. 특히 지난해 왕자관 아들 인감 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모든 화살은 당시 허위 신분증을 식별하지 못했던 여직원에게 돌아가는 현실을 보며 반씨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모습보다 하위직 직원에게 모두 떠넘기려는 태도가 잘못됐는데 그걸 그냥 놔두면 되겠습니까" 힘없는 여직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전국 공무원들과 연대해 끈질긴 투쟁을 한 끝에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선의 결과를 내왔다고 성과를 전한다.

이후 반씨는 공무원 직장협의회장과 함께 더욱 더 전국적 연대에 열심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할 일이 뭔가를 얻어오고자 전국 회의에 꼭 참석한다"는 반씨는 여성 공무원들의 권익이 보호되기 위해선 전국 공무원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이곳에서 혼자 앞장서 봤자 변하지 않는다"는 반씨는 전국협의회 내에 여성위원회 결성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나설수록 반씨에게 돌아오는 것은 직장 동료간의 따돌림과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단다. 그럴수록 반씨는 "잠잘 시간, 쉴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더욱 가치와 비중을 두게 된단다.

언제까지 가슴앓이로 삭힐 문제 아니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 사회 인식 바꿔나가야


"공무원 사회에서 여성은 유리 천장 같아요" 올라갈 길이 빤히 보이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막혀있는 현실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여성은 7급 이상 진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국 공무원 중 정식직원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데 남성들이 위기감을 느낀 탓인지 더욱 우릴 내몰아내려 하고 있어요" 심지어 정부에 여성부가 따로 신설되어 여러 규약이 생겼지만 공무원 사회는 여전히 변화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금씩 변하는 일상을 통해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번 욕설 파문도 결국 직장 상사가 하위직으로 전출되면서 사건이 일단락 됐다. "내가 그 분에게 이번 문제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렸고 그 분도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이번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일이 몇번이나 더 있어야 할지는 반씨 자신도 모른다. 단지 한걸음 한걸음 나아지는 것을 보며 마침내 유리천장을 깰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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