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주는 좋은 이웃있어 정말 든든해요
나를 키워주는 좋은 이웃있어 정말 든든해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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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그땐 그걸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잔인한 이지메였다. 왕따. 16년 전에도 그런 것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은 마음의 어버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던 터라,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는 모두 새겨듣고 따라야 하는 절대진리였다. 적어도 순진했던 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날 가만히 부르셨다. 아니 잘 몰려다니던 7명의 아이들 중 여섯을 방과후에 남으라고 하셨다. 한 아이가 결석했던 날이다. 선생님은 한 명씩 개인면담을 하셨다. 그 주된 내용은 결석한 그 아이의 나쁜 점을 묻고 말해 주는 것이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하신 말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 애랑 어울리지 마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잘 놀던 아이와 당장 내일부터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하다니... 그래도 무지했던 우린 고분고분 선생님 말씀에 따랐다. 생각하기 싫은 슬픈 기억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후회하고 절대 답습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데도 자신이 없어진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난 사람들을 여러 부류로 나눠놓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남편과의 대화에서 은연중에 나오는 남을 무시하고 헐뜯는 말들을 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놀이터에서조차 아이들의 차림새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걸보고 아이들은 무엇을 느낄 것인가? 나도 그때의 그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다른 누군가를 임의대로 판단해서 결정지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때론 손가락 발가락은 열개, 다리는 두개, 눈도 두개라고 노래불러주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집안엔 엄마아빠, 그리고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당연히 그러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할까 두렵다. 자신보다 잘나든 못나든 다르든 인정하지 못하고 나쁜 것으로 치부해버릴까 두렵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이 반드시 좋은 대안을 내놓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공평하고 개방된 사고를 심어줄 수 있을까? 그런 사고가 어떤 것인지 나 스스로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요즘 난 제법 맘이 편해졌다. 광주에 온지 5년 만에 알게 된 이웃들 덕분에 말이다. 그들이 공동육아를 고민하는 사람들 때문도 아니고 거창하게 말해 환경운동가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선하디 선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남을 더 먹이려 하고 남보다 자신이 더 일하려고 하는 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난 비로소 안심이다. 그들의 맑은 빛에 나도 물들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그들을 사랑할 수 있길 기대한다.

공동육아사이트 www.gongdo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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