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단상-노영필]학교운영위원회에 바란다
[학교단상-노영필]학교운영위원회에 바란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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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광주 운남중 교사]
다시 새 학기를 맞이했다. 유달리 따사로운 봄볕이 대지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있다. 파릇파릇 움터오는 봄기운이 가지 끝과 대지 위의 풀잎에서 싱그럽게 느껴진다. 차디찬 겨울의 위세에 숨죽여왔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광경이 신비스럽다.

3월이 되자 각 학교마다 분주하게 학교운영위원회 선거로 달아올랐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출발한 지 7년째로 접어들면서 자기 생명력을 얻은 것일까. 학교의 권위적인 위세에 눌려 있던 자치교육의 생명력이 용트림하는 것 같아 감동스럽다.

그러나 몇몇 현장에서 인위적인 광경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학교운영위원회의 광기(?)가 그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들 학교 운영에 관심이 깊었단 말인가. 공교육이 위험하다고 법석일 때 숨죽이고 계시던 분들까지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학부모들도 그렇고 교무실도 그렇다.

위원 선출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은 학교교육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예년에 마땅한 입후보자가 없어 고민하던 것과 달리 학교마다 2-3대 1의 치열한 경합이 붙었다. 뜨겁게 경합이 붙은 것도 그렇지만 그들이 연설문으로 토해낸 활동에 대한 다짐은 실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과연 출마한 그들은 학교운영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나 있단 말인가. 학교장 배치를 자신이 했다거나 학교 시설을 설치하도록 교육청에 힘쓸 수 있다는 내용까지 서슴없이 해대니 말이다.

기실 학부모들은 학교의 전문적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안다고 하더라도 쟁점을 벌이는 것이 피곤한 일일뿐이다. 입바른 말 앞에 자기 아이가 눈에 어른거리고 자신의 이미지만 구겨진다는 부담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여느 교무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조용하던 교무실이 3월 한달 내내 술렁거렸다. 전교조 조합원들은 교육자치를 선언하면서 조직적인 진출의사를 밝혔고, 다른 후보자들은 학교자치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전교조가 모두 말아먹으려 한다는 논리로 폄하하였다. 게다가 해바라기같던 과거는 언제냐는 듯이 학교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운운한다.

그렇다면 학교운영위원회는 현재 어떤 위치에 놓여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기구인가. 한마디로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제반 사업을 공급자 단독으로 결정하여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학부모나 지역의 수요자들과 신중하게 심의를 거쳐 운영하겠다는 법제조직이다. 교복, 수학여행, 앨범의 업체결정, 그리고 방과 후 활동 등 중요한 학교계획을 지역의 처지에 맞게 검토하고 심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학교운영위원회는 심의기관일 뿐이지 의결기관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의 학교운영위원회 위상으론 심의된 안건이 학교운영의 방향과 어긋나면 집행권자가 집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에 대한 견제 방법도 없다. 더더욱 학생, 행정, 교사가 수평적인 학교주체임에도 유달리 주인인 냥 행세하는 학교측도 문제이다.

예컨대 남녀합반문제는 교육환경이나 교육방식의 차원에서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쟁점이 될 수 있다. 이 때 위원회에 상정하여 꼼꼼히 검토할 안건임에도 상정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의식이다.

사회적으로 여성부까지 만들어 성차별을 없애려는 현실에 대해 학교운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보다는 자신들의 관념을 보위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쪽이다. 그냥 막연하게 학생들이 실력만 향상되면 좋다.

학부모들은 내 자식만 혜택을 받으면 좋고, 교사들은 애써 일을 늘리지 않으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숨어있다. 거기에 공동체적 인간교육이나 현실적인 성차별교육을 학교에 반영시키려는 담론을 끼워넣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현실 정치판의 연장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선출하는 것 때문에 과열되는 학교운영위원회 선거라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지역공동체를 꿈꾸고 소외된 삶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학교니 명문학교니 하는 경쟁논리를 앞장세운다면 결국 학교는 언어학자 촘스키가 말한 대로 "거짓교육의 산실"이 되고 말 것이다.

정치인들의 명함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교육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할 때 학생들을 포함한 학부모, 교사, 행정이 3박자를 이뤄 생명력있는 지역교육의 산실이 될 것이다.

올해는 학교운영위원회 역할을 바로 세우는 원년으로 삼았으면 한다. 교사들조차 학교운영위원회가 왜 존재하는 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발의를 어떻게 하고 안건 상정을 어떻게 하며 왜 심의를 거치는 것인지 그 의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우리는 새 봄의 창조적인 생명처럼 '대충'을 넘어서 학교운영위원회의 새 바람으로 거짓 교육의 산실을 바로 세워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진실된 삶을 그리는 학교자치의 숨통을 열어주는 길목에 서 있는 희망이다. 자기 자식만 잘되기를 비는 이기적인 욕심과 학교운영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교사들이 서로 겉돌 때 학교를 죽이고 아이들을 두 번 죽인다. 경쟁교육의 위선을 털어 내고 아이들에게 진실로 다가가자. 봄의 생명력을 안고.

'학교단상' '교단일기' 필진 : ▶정금자(무안 몽탄중) ▶배이상헌(광주기게공고) ▶노영필(광주운남중) ▶장권호(광주과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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