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아무도 없는데...
우리집엔 아무도 없는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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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가정방문>
어렸을 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신다고 하면 몇일 전부터 밤잠을 설쳤다. 집이 초라할 뿐아니라 선생님을 반듯하게 모실 앉을 자리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생계를 꾸리시느라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늘 자랑스럽고 고맙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눈에 거슬리고, 어떻게 우리집은 건너뛸 수 없나하며 작은 몸을 뒤척였다.

쌍화차와 비스켓이 놓인 미경이네 다과상, 은순이 엄마의 고동색 블라우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알량한 자존심과 나를 감추고 싶은 비겁함은 해년마다 거듭됐고, 유년시절 가정방문은 그렇게 나를 아프게 했다.

"선생님, 우리집에 안오시면 안돼요?"
"선생님, 우리 엄마는 병원에 가시는데 그래도 오실거예요?"

가정방문 일정을 발표하는 날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 이었다. 의례 있는 일이니 받아들이겠다는 순응파, 얼굴에 오만가지 인상을 쓰는 고통파, 이 핑계 저 핑계를 만들어내는 핑계파가 그것이다. 그중 핑계파의 비율이 만만치 않다. 그때마다 나는 '맞불 작전'을 편다.

"그래, 아무도 안계셔도 괜찮아. 혜민이 너를 보러 가는 거야."
한바탕 진통속에 마을별로 순서가 짜여지면 아이들은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 3학급에 전교생이 97명인 작은 시골학교. 아름다운 우리학교의 가정방문은 이렇게 두런거림속에 시작된다.

길잡이 3명을 태우고 교문을 나서는데 이 녀석들 배가 고프다고 엄살이다. 면소재지에서 짜장면 한 그릇씩 사줬더니 입이 귀밑까지 벌어진다. 당연히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선생님 이쪽이요, 이쪽."
아이들 손가락은 분명 길을 잡는데 내눈은 자꾸 아기 진달래, 복숭아꽃을 따라간다. '야, 진달래가 해민이 처럼 이쁘다' 했더니 뒷좌석에 타고 있던 남학생들이 배꼽을 쥐며 흐물거린다.

'우리 태연이 잘 좀 부탁허요'
태연이 할머니는 자꾸 내 손을 잡았다. 아들 내외가 이혼하여 세 살때부터 할머니 혼자서 태연이를 키워왔다고 한다. 태연이 아버지는 객지로 돈벌러 나가 감감무소식이고 아이는 자라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내 몸이 성해야 저 놈을 갈칠것인디...' 할머니는 자꾸 눈물을 훔쳐낸다. 눈물은 사립밖까지 따라나오고. 눈물바람을 예견했던지 그때까지도 태연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태연이도 내 유년처럼 밤잠을 설쳤는지 모른다.
태연이 같은 녀석이 우리반에는 7명이나 더 있다. 스물여섯명중에 8명이니 30%에 가까운 수치다. 이혼이나 사고로 부모 중 한 분이 없거나 할머니하고만 산다.

부모님이 계셔도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객지로 돈벌러 가시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나가셨다는 슬희, 어머니가 장에 가셨다는 현산이, 저어기 밭에 계신다는 홍구…. (그래도 어딘가에 부모님이 계신다니 안심이다)

까불이 홍구도 집에서는 몹시 수줍은 모습이었다. 연로하신 홍구할아버지는 갑자기 마루로 나오시더니 '우리 홍구가 나한테 참 잘하요'하고 들어가신다. 도시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시골학교에는 아직 가정방문이라는 행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아이들의 생활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을 이해하는 영역이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 아이의 꼭대기 집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와 교사간의 3차원적인 공간 확보다.

마지막 홍구집을 나오는데 짙푸른 마늘밭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내 눈속에 모가지를 추켜세우고 있던 마늘밭을 볼 때마다 비장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몽탄의 겨울밭을 버텨낸 장한 것들. 쑥쑥 올라오는 마늘밭을 볼 때마다 우리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얀 눈 속에서 겨울을 이겨낸 푸른 아이들아!

잘 자라거라.

<무안몽탄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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