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있는 '나' 발견, 의욕과 여유가 넘친다
생기 있는 '나' 발견, 의욕과 여유가 넘친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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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이 창으로 햇살만 따스하게 스며들어 마치 나른한 봄이 이미 와버린 것 같았던 이번 겨울 어느 날. 딸아이와 들뜬 기분으로 볕을 쬐고 있는데,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왔다. “언니? 몸은 좀 어때? 출산 예정일이 언제라고 그랬지?......둘째까지 키우다보면 언니 하고 싶다던 공부 시작하기 아무래도 힘들겠네.....서울로 다시 올라올 계획은 영 없는 거야?.....설마 그냥 그렇게 아줌마로 지낼 건 아니지?....” 통화를 끝낸 후 햇빛은 더 이상 포근하게 내 등을 감싸주던 그 빛이 아니었다.

갑자기 이렇게도 화창한 날에 아파트 사각공간에 갇혀 먼 산과 아이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춰지듯 보이면서 따스한 햇빛이 우울함으로 바래버렸다. 더불어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 시대의 많은 전업주부들이 빠져 있다는 모든 딜레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막연하게 아이들이 크면 미뤄둔 공부 시작해야지, 어떻게 서울로 다시 올라갈 여건을 마련해봐야지 등등의 생각들로 채워놓은 근거없는 정체성, 아이만 바라보며 세상을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다가오는 사회로부터의 소외, 바닥으로 치닫는 자신감, 쌓여가는 의욕 상실, 내면세계의 공허함.......

결혼 3년차, 너무도 다른 결혼전후 생활
전업주부로 느끼는 무력감, 육아에 저당잡힌 안일함


그랬다. 결혼 3년차인 나는 결혼 후 줄곧 너무나도 다른 결혼 전후의 생활 속에서 그다지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이 늘 우울하고 답답했지만 신혼 초에 바로 아이가 생겨 사랑스러운 그 존재 때문에 모든 것을 덮고 살다가, 가끔씩 찾아오는 지우들의 안부전화 같은 주위의 자극이 나를 통째로 흔들어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의 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이 나를 다독거리며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일러주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우뚝 일어서 주체적으로 생활할 명확한 의욕도 길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그럴 즈음, 그러니까 후배의 전화를 받고 며칠 동안 우울해하고 있을 즈음, 광주지역에 공동육아 준비모임이 꾸려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여느 엄마들처럼 커가는 아이를 보며 저 아이와 함께 어떤 길을 가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던 차였고, 풍문에 들어 만들어볼 생각까지는 못하고 서울처럼 주위에 있다면 그곳에 보내볼 생각은 하고 있었던 터라 귀가 솔깃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모임에 참석하기를 꾸준히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거운 몸으로 딸아이의 손을 이끌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모인 엄마들과 만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준비해나가면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나 자신에 대한 진정한 반가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가 계기가 되어 시작한 일이지만,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고 이야기를 나누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가는 일은 필연적으로 나 자신의 변화가 앞서는 일이었다. 남편과 가족만 바라보게 되는 전업주부로서 느끼는 무력감이나 육아에 인생을 저당잡힌 것 같은 안일함으로 더 이상 나날을 보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귀가 솔깃한 "공동육아라니…"
'관심 반' '반가움 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냅달 내달렸다…


솔직히 치기 어린 마음에 이 정도는 해야겠지 하는 생각 외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내게 이제는 많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어린이집을 잘 꾸려 우리 아이들을 자연을 닮은 건강한 아이들로도 키워야겠고, 하고 싶은 공부를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더 나아가 광주에 어린이 전문 도서관도 설립해보고 싶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반가운 일은 열린 마음과 뜻을 모아갈 수 있는 아줌마들을 만나게 된 것과 나와 그들이 함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서울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 와서 광주에 친분을 맺고 지내던 사람이 없던 내게 그들은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모른다.

아, 어찌되었든 정말 싱그러운 봄햇살이 눈 부시게 흩뿌려지는 요즘, 설령 비가 오는 흐린 날이라도, 아이의 손을 잡은 내 발걸음은 바빠졌고, 공허하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저버렸던 꿈과 차분한 계획들로 들어차고 있다. 이제는 지우들의 안부전화에도 의욕과 여유가 담긴 목소리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생기가 도는 내 모습에 기분이 좋아서 옆에서 같이 웃고 있던 딸아이에게 “오늘은 엄마도 우리 서경이만큼 예쁘지?” 하고 물었더니, 27개월짜리 딸아이가 “아니야, 엄마랑 서경이랑 같이 제일 예뻐!” 하고 대답한다.
“서경아, 서진아(곧 태어날 둘째 아이 이름)! 엄마랑 자연을 닮으러 긴 나들이 가볼까?”

광주지역 '공동육아' 공개 설명회

우리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놀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돌보면서 자랄 수 있는 그런 터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길에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 대 상 : 취학 전 아이를 두신 부모님, 공동육아와 공동체에 관심 있는 여러분.
◎ 강 사 : 김동진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
◎ 일 시 : 2002. 3. 16(토) 오후 3시 ~ 5시
◎ 장 소 : 광주YWCA 7층 전교조 대강당
◎ 참가비 : 3,000원
◎ 주 관 : 광주지역 공동육아 준비위원회
◎ 후 원 : 빛고을 생협, 참교육 학부모회
◎ 문 의 : 011-614-6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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