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종이호랑이인가
그대는 종이호랑이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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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과 함께 모인 아이들은 유달리 소란스럽다. 선생님도 새롭고, 친구들도 새롭기 때문일까. 아이들의 시선을 모아 보지만 좀처럼 긴장된 태도를 만들 수 없다. 협박이라도 하면 좀 나아지려나 싶지만 장난치고 떠들고 산만한 모습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가정에서 귀하게 자랐기 때문일까, 풍요로운 환경 탓에 선생님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은 것인가, 시원스런 답을 찾기 어렵다..

선생님들은 갈수록 아이들을 지도하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아이들은 버르장머리 없이 자기만 내세운다. 선생님과 친하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먹을 것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 수업시간의 잘못된 태도에 꾸지람을 하면 오히려 선생님 쪽의 자존심만 상하는 일이 많다. 이런 아이들이 근엄한 선생님의 훈화를 새겨들을 리가 없다. 바른 자세를 갖추지 못한 것은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들은 종이 호랑이다. 아이들 앞에선 불호령을 치지만 교무실에선 벙어리다. 아이들에게는 회의방법을 교육시키고 토론식 수업도 하지만 정작 교무실에선 회의와 토론이 없다. 아니 회의 자체가 없다. 교무실에선 통보와 전달만이 미덕이다.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형식만 회의이지 내용은 전혀 논쟁이나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때론 경력이 적은 사람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법 한데 그런 행동을 하다간 봉변당하기 쉽다. 감히 어디서 일천한 경력으로 나불거리냐는 식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경력이 해주는 모양이다.

아이들앞 불호령 교무실선 벙어리

흔히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20세기 교사'라는 말은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21세기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20세기 교사들이 도처에 있다. 동학의 최제우는 "아이들이 한울님"이라고 했다. 재기 발랄한 아이들이 넘쳐도 아이들로부터 배우려는 교사는 드물다. 아니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허무는 일이다. 교사들이 제대로 권위를 세우려면 아이들에게 허위의식으로 포장하려던 과오를 고백할 때 가능할 것이다. 아이들로부터 지도방법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떠드는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교사들은 상명하복으로 움직인다. 말만 동료이지 수평적인 관계는 없다. 따라서 논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문제는 논쟁으로 풀고 대화로 풀어야 할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하건만 그럴 수가 없다. 현장교사들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아낼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아니 있지만 관리자들의 이해타산에 맞지 않는 귀찮은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니 논의하고 대화할 일도 그냥 결정해 놓고 통보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그런 일은 학기초 업무분장을 배치할 때부터 시작된다.

교무실은 늘 모범답안을 요구한다. 다른 의견의 문제제기는 교무실을 시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냥 좋은(?) 모범답안이 있는데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이럴 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국가인지 의심된다. 교사들이 모범답안에 충실하는 한 우리 교육은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 한 때 흑백논리를 사회비판세력의 논리라고 비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흑백논리를 훈련시키는 곳이 학교다. 오로지 학교는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만 구분한다. 그 선을 벗어나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 애초부터 그런 생각을 키우는 것은 잘못된 교육인 것이다.

교무실이 '논쟁의 장' 됐으면

천편일률적인 교사들의 능력은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재치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교육부에서 시작한 지침은 말단 학교까지 일사불란하게 전달된다. 한 치의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 시도교육청이 내린 업무로 학교는 판에 박힌 행동을 한다. 아마도 교육청에선 기본틀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예시를 했을 법한 데 그게 법이 되고 지시가 된다. 그것을 일선 학교에서 변화시켜 적용할 수 없다. 그것에 충실히 해야 학교의 관리자들이 점수를 관리할 수 있고 능력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복장에서부터 학습지도안까지 이미 정해진 답을 베끼고 외워야 훌륭한 학교이다. 논의가 없는 것이 속편한 일이다. 논의는 창조적인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끄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 1년은 교무실에서 논쟁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면 한다. 선생님들부터 먼저 함께 생각하며 논쟁을 벌이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다양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 어느덧 떠들고 버릇없어 보이던 아이들을 품안에 안고 교육할 수 있지 않을까. 사고의 전환이 학교 개혁의 첫 번째 과제이다. 이제 종이 호랑이 가면을 벗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교무실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버릇없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의 한울님으로 보일 때 우리교육의 희망은 커진다.

*'학교단상'은 광주·전남지역 현직교사들이 전하는 생생한 교육현장의 목소리입니다. 참여교사들은 지난 시절 교육민주화과정에서 누구못지않은 교육에 대한 열정을 보여왔으며 앞으로 우리 교육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은 '학교단상'과'교단일기'를 통해 독자여러분을 만나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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