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비엔날레'라구요?
'세계 3대 비엔날레'라구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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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문화난장에는 김하림 광주전남문화연대 대표의 월드컵과 비엔날레에 대한 글이 있고, 그 밑 독자의말 란에는 '문화사랑'이라는 분의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3대비엔날레다. 그런데 광주에서만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요지의 짤막한 발언이 있다. 비엔날레 직원의 한사람으로서 광주비엔날레의 가치를 그렇게 평가해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비엔날레와 관련해서라면, 내가 밥 벌어먹는 직장인 만큼, 나 역시 날이면 날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화사랑님과 생각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기실 광주비엔날레가 국제비엔날레들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매회 성과있는 전시를 치러내긴 하지만, 그러한 결과는 '세계 3대'라고 딱히 꼬집어서 말하기는 굉장히 곤란한 부분이 있고, 그것은 문화와 예술의 논리에서는 대단히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논리는 '차이'의 논리이지
스포츠처럼 등위의 논리가 아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에서라면 경쟁자들끼리의 등위를 매길 수 있지만, 문화와 예술은 어떠한 것이 되었건 그것을 등위로 매길 수는 없다. 문화와 예술의 논리는 '차이'의 논리이지 등위의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스포츠는 정해진 룰이 있어서 그 룰에 따른 경기를 펼치지만, 문화와 예술은 경쟁이 아니며, 인간의 지각과 삶의 총체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룰'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특정의 예술작품이나 문화행위를 스포츠와 같은 방식으로 우열을 가릴 수도 없고, 가려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기실 20세기의 예술, 특히 미술만 해도 20세기 벽두부터 미술의 주제는 '미술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했다. 때문에 마르셀 뒤샹은 미술이란 만드는 것이란 개념을 전복시키기 위해 어느 이름모를 공장에서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인 화장실 변기를 갖다놓고, 이것이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행위의 이면에는 미술이라는 창작행위는 물리적인 제조행위를 뛰어넘어 특정의 대상과 영역에 '가치' 혹은 '개념'을 부여한다는 것을 포괄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많은 예술가들은 그야말로 치열하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고, 지금도 예술은 이것이다고 정확히 합의된 개념은 없다. 예술의 경계는 끊임없이 파괴되고, 건설되며, 변화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무슨 콩쿨대회나 미술대회에서, 또는 국전이나 여타의 공모전 등에서 1등, 2등, 3등 하고 등위를 매기지만, 예술의 본래적 의미에서라면 그것은 얼마나 웃기는 짓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비교가 가능하다. 한국의 일반대중들은 추상미술에 대한 접근경험이 없기 때문에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반면 초등학생 손자가 그린 어설픈 풍경화가 훨씬 더 감동적일 수 있다.

물론 현재 각국에서 치러지는 비엔날레들의 위상은 보는 이에 따라 가치평가를 달리 하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광주비엔날레는 제3 세계, 특히 아시아에서 치러지는 신생의 비엔날레들 중 눈에 띄게 실속있게 전시가 치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적 특수성에 기반한 전시행정의 관료성이라는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국제미술계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사랑님 말씀마따나 정작 이러한 문화적 가치는 광주나 국내에서 지나치게 평가절하되어진 점이 없지 않다. 서울에서는 지방에서 치러지는 이벤트의 하나로 격하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다른 수많은 행사들중 하나와 별반 차별성이 없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심지어 관광분야에 종사하는 어떤 학자는 광주비엔날레라는 예술행사를 김치축제와 같은 반열의 행사로 놓고 설문조사를 실시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예술 본래적 의미에서 볼 때
무슨 무슨 대회나 콩쿨에서 1,2,3등
등위 매기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는 순위와는 무관하다. 베니스와 카셀, 리용과 뮌스터, 이스탄불과 휘트니, 베를린과 피렌체 등지에서 치뤄지는 수많은 비엔날레들은 제각기 그 형식이 판이하다. 어떤 것은 10년제고, 어떤 것은 5년제이며, 어떤 것은 2년제다. 또 한 사람이 모든 행사를 도맡기도 하고 몇몇이서 전시를 같이 꾸미기도 하며, 휘트니비엔날레는 미국 국전과 큰 차이가 없다. 광주비엔날레의 매회 행사의 비교도 마찬가지다. 매회 다른 상황과 조건 아래서 다른 방식으로 치뤄지는 비엔날레를 놓고 1회는 2회보다 못했다거나 2회는 3회보다 낫다거나고 단순비교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하림 교수의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이점 월드컵과 비엔날레를 동시관람하게 될 광주시민들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월드컵과 비엔날레의 속성이 근원적으로 다른 데 기반하고 있는데, 단지 관광상품의 하나라는 피상적인 인식만을 가지고 대하면, 그 성과는 기대할 것이 없다. 스포츠는 정해진 룰과 페어플레이, 승부근성, 승부의 결과 등이 관망의 초점이라면, 예술은 이 '차이'가 핵심의 키워드다. 각국에서 출품된 다양한 경향의 예술작품을 단순히 이것이 좋다, 저것은 못하다는 관점보다는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이렇구나 하는 동등비교와 다양한 조건과 상황, 전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바라보는 자인 내가 어떤 기준을 같고 그것을 바라보는가,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등의 경계 없는 질문들이 비엔날레 관람의 핵심이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나는 문화사랑님의 주장, 광주와 국내에서 광주비엔날레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점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세계3대 비엔날레라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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