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이땅의 농촌은 희망이 없나
정녕 이땅의 농촌은 희망이 없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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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추운데 색시들이 이런 거 하고 다닐 것이 아니라, 쌀값이나 올려주라고 하시오. 올려주라는 쌀값은 올려주지 않고 '고용구조 조사' 이런 것을 해서 뭐한다요."


고용구조 조사차 내려간 농촌에서 제일 먼저 들은 소리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었다.한 달 내내 매달렸던 취업박람회를 끝내고 그 동안 밀린 고용구조 조사를 하러 가야한다는 말에, 농촌을 가겠다고 자원했다.

'예고' 소리 절로 나오는 농촌

고용구조조사란 한국노동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통계조사로 취업인구에 대해 산업은 소분류(194개), 직업은 세분류(419개)까지 파악을 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직업별 고용전망 및 실업대책, 고용촉진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표본조사를 하는 것이다. 가가호호 방문을 해서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조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막상 몸으로 부딪친 현실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저 쌀을 다 어떻게 할 것이요. 도대체 답이 안 나오요." "빚이 없는 집이 어디 있는가 보시오. 쎄 빠지게 일해봤자 늘어나는 것은 빚밖에 없는디 어떻게 농사를 짓것소. 희망이 있어야 농사를 짓든지 말든지 하제." "이 판국인디, 고용구조 조산지 뭔지 할 마음이 나것소. 정 하고 싶으면 이장하고 오시오."

"저 쌀을 어떻게 할 것이요"

첫 날. 내 입에서는 에고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동네 어르신들 말씀처럼 쎄 빠지게 일을 해도, 제 값은커녕, 빚만 늘어나는 농촌의 현실을 눈으로 보고 귀로 직접 들으니, '고용구조조사' 한다며 선뜻 설문지를 들이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되돌아 올 수도 없고 해서, 일단 이장을 수소문했다.


면사무소 가서 표본조사할 3군데 지역의 이장전화번호를 알아내 통화를 한 후, 지난 주 내내 쌀값 투쟁하느라 데모를 하러 다녔다는 이장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이장한테 전후사정 이야기를 하고, 쓰잘데기 없는 짓을 뭐하러 하고 다니요. 눈과 귀가 먼 노인네가 대통령을 하고 있으니, 농촌이 이 지경이라며, 이 놈의 나라가 어떻게 될라고 그런지 모르겠다며 같이 다니지 못하겠다는 이장을 달래, 가가호호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쌀값 좀 올려 달라고 좀 전해주소"

하지만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어, 반도 끝내지 못하고, 첫 날은 전화번호만 받아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이틀째, 삼일째, 아예 출근을 사무실이 아닌, 그 곳으로 했다. 첫 날은 집에 사람이 없으면 포기를 했는데 둘째 날부터는 일을 하고 계시는 비닐하우스를 찾아가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셋째 날은 이미 다녀갔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진 터라 한결 수월했다.


정치하는 놈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며, 색시들 그렇게 고생하고 다니지 말고, 가서 쌀값이나 올려달라고 하라며 설문에 응할 수 없다던 한 할아버지는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자꾸 손에다 귤을 쥐어 주었다. 오죽하면 우리가 일을 하러 온 색시들한테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것소. 오죽하면...이라며, 대문 밖까지 나와서 저 너머 비닐하우스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인게 그리 가보라고 하신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희망 없어도 농사에 매달려야 하는 농민들..."

젊은 사람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더 많은 곳. 정부를 원망하면서도, 색시들 힘들어서 어떻게 해라며, 우리를 걱정해주는 따뜻하고 순박한 마음이 살아 있는 곳을 돌아다니며, 나는 우리 농촌이 처한 현실이 매스컴을 통해 전해들은 것보다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일동안 41가구 고용구조 조사를 끝내고 돌아온 저녁,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분노에 찬 농부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한 평생 해 온 일이라고는 농사짓는 것 밖에 없어 희망이 없는 줄 알면서도 농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한숨 소리가 밤새 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내가 만난 농부들의 말처럼 대한민국 농촌은 진정 희망이 없는 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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