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5.18에 대한 쓴소리 몇마디
[투데이오늘]5.18에 대한 쓴소리 몇마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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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
"5ㆍ18이 세계적으로 조명받고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5ㆍ18이 광주.전남의 '지역적 사건' 정도로 폄하되거나 더 이상 언급하기 싫은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광주호에서 화순 이서쪽으로 가다보면, '정곡'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서 제법 큰 고개 하나를 힘들여 넘어서면 이서가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화순 이서쪽에 비가 내리면 섬진강 물이 되고 정곡쪽에 비가 내리면 영산강 물이 되니까 그 고개는 섬진강과 영산강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령(分水領)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를 생각하면 전후를 확실히 구분짓는 분수령이 몇 있는데, 5ㆍ18은 운동의 질량면에서 가장 큰 분수령으로 다가온다. 5ㆍ18의 영향은 적색공포나 미국의 성역화를 깼다는 정치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경제ㆍ사회ㆍ문화ㆍ종교ㆍ철학 할 것 없이 사회 곳곳에 미치고 있다.

어디 우리나라 뿐이겠는가? 5ㆍ18의 영향력은 동남아를 비롯하여 중남미, 유럽등 세계 곳곳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5ㆍ18이 세계적으로 조명받고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5ㆍ18이 광주.전남의 '지역적 사건' 정도로 폄하되거나 더 이상 언급하기 싫은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광주에서 조차도 5ㆍ18 하면 상을 찌뿌리는 상황이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5ㆍ18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보면 네가지 정도의 결정적 잘못이 있다고 사료된다.

첫째, 5ㆍ18을 전체 민주화 운동사 속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5ㆍ18이라는 큰 분수령이 80년 이전 운동과 80년 이후의 운동을 끌어 안고 가야하는데, 5ㆍ18만 이기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다른 운동과 단절되어 소외를 자초한 셈이다.

둘째, 5ㆍ18을 광주 전남이라는 지역속에 묻어 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한 10ㆍ26의 직접적 동기는 부마항쟁이다. 부마항쟁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산업화의 모순 때문에 심화된 '계층적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그에 비하여 5ㆍ18은 '지역적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부산,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항쟁과 광주에서 일어난 5ㆍ18은 유신체제의 쌍생아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전체 민주화 운동사 속에서 부마항쟁과 5ㆍ18의 관련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5ㆍ18은 운동사의 분수령일 뿐 아니라 지역과 지역을 엮는 분수령이기도 한 것이다. 5ㆍ18은 광주.전남 속에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5ㆍ18을 관련자들만이 독차지하려는 '당사자 주의'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3ㆍ1운동이 33인 만의 것이 아니듯이, 4ㆍ19가 4ㆍ19에 참여했던 학생들 만의 것이 아니듯이, 5ㆍ18도 당연히 관련 당사자를 포함한 시민 모두의 것이고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이며 세계시민 모두의 것이다. 좁게는 5ㆍ18은 광주시민 모두가, 전남도민 모두가 '관련 당사자'인 것이다.

그런데 5ㆍ18의 직접적 관련자들이 마치 5ㆍ18을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농단한 면이 없지 않다. 그 결과 5ㆍ18은 관련 당사자들의 '명예'일런지는 모르나 우리 모두의 '멍에'가 되어 버렸다.

넷째, 5ㆍ18을 당사자들의 주도권 싸움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따지고 싶지 않다. 당사자들 끼리 만이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지 않는다면 5월은 항상 싸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5ㆍ18의 상징적 집합체인 5월 재단에게 몇가지 제안의 말씀을 드린다. 우선 5월 재단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돈이 없어 후원회에 가입할 수 없는 많은 5ㆍ18 관련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재단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사회는 재단의 기금을 관리하는 '재단이사회'를 만들어 소수의 원로들이 운영하게 하고, 실질적인 업무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한 '운영이사회'에서 주관하면 어떨까?

이사회가 지나치게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사회 자체가 성회 되지도 않는 사태가 비일비재 하다는데, 이사회에 권한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소위원회를 분야별로 구성하여 권한을 분산하면 감투 싸움은 훨씬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한가지만 더 첨언하면, 행사 위주의 위원회보다도 피해 당사자들의 아픔을 끌어안는 소위원회 그리고 5월 정신을 승화시킬 수 있는 소위원회들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활동하였으면 한다.

/김상윤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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