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바보 사자들과 관리인
동물원의 바보 사자들과 관리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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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오늘]송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옛날 어느 나라 수도에 거대한 동물원이 하나 있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굉장한 규모로 잘 다듬어져 있는 동물원이었다. 그런데 그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동물원 측에서 아무리 선전을 해도 사람들은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 동물원은 정말로 인기가 없었던가 보았다.

어느 날 동물원 앞을 지나가던 한 거지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동물원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란 찾아 볼 수 없었고, 사납고 흉칙하게 생긴 사자 여섯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거지는 슬그머니 사자들을 건들어보고 싶어졌다. 거지는 자신이 애써 얻어놓은 고기 한 덩어리를 던져 주었다.

그러자 사자들 사이에 금방 난리가 났다. 지금까지 어슬렁거리고만 있던 사자들이 머리 갈기를 세우고 흉칙한 어금니를 들어내 보이면서 그 고기 덩어리를 차지하기 위해 격돌했다. 그들이 다투면서 내지르는 소리는 거지의 귀를 상하게 할 정도였다. 에구머니나... 이를 어쩐다? 거지는 이러다 정말 사자들이 죽기라도 하면 자신이 무슨 죄를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어쩌다 행운으로 얻은 고기 덩어리는 왜 주어가지고... 거지는 이 위기를 어떻게든 막아야겠다 생각하고 동물원 관리사 쪽으로 달려갔다. 으리으리한 관리사 안을 이리 저리 찾다보니 관리인인 듯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대낮인데도 술에 취해 가죽 소파 위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이보시오. 사자들이 물어뜯으며 싸우고 있소. 어서 가서 말려야지 사자들이 다 죽겠소." 거지는 소리치며 관리인을 흔들어 깨웠다.

"네가 무언데 사자가 뒈진다고 법석이야. 할 일 없으면 집에 가서 나처럼 잠이나 자."

관리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쏘아붙였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돌아 누어 다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사자들의 으르렁거림은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뛰쳐나와 관리사 안으로 달려들 것만 같았다. 거지는 안되겠다 싶어 관리인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사자들이 다 죽는단 말이요."

그러자 관리인이 근육질의 어깨를 벌떡 일으켰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비고 나서 거지를 찍을듯이 쏘아보았다. 관리인은 그러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 거지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서 야단 지랄이야. 뒈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꺼져."

거지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며 기어드는 소리로 말했다.

"사자들이 다 죽게 생겼다니까요."

그러자 관리인은 더욱 화가 치미는지 앞의 책상을 걷어차며 다시 소리쳤다.

"야, 임마. 거지새끼는 거지 걱정이나 하지, 배부른 사자 걱정까지 다 하냐. 하늘이 배꼽잡을 소리 그만 하고 당장 꺼져. 더 쫑알거리면 너 영창에 집어 넣어버린다. 여긴 너 같은 놈들이 무단으로 들어와서 거지 노릇할 곳이 아니야."

거지는 성이 나서 번들거리는 관리인의 이마빼기를 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잘못했다간 정말 영창에 끌려가 내팽개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지는 분이 풀리지 않아, "아무리 거지라도 너 같은 놈하고는 안바꿔, 짜샤."하고 팩 쏘아주고는 서둘러 관리실을 빠져 나왔다. 그 사이에 사자들의 싸움은 그쳐 있었다. 그러나 그 흉물스럽던 여섯 마리의 사자들 가운데 세 마리는 치유하기 힘들 상처를 입은 채 나자빠져 있고, 다른 세 마리는 선혈이 낭자한 머리 갈기를 흔들며 빼앗은 고기 덩어리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이놈의 동물원에는 벼락이라도 안치나?" 거지는 혼자 중얼거리며 동물원을 걸어나갔다.

/송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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