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사잇길-멩절이라고 모태가꼬
전라도 말 사잇길-멩절이라고 모태가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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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일에 쫓겨 피곤한 몸이지만, 일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무리해서라도 고향집을 찾지 않으면, 멀리 사는 동무들이나 친지들의 얼굴은 일년 내내 못 보고 지내게 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 다녀온 것이다.

닭을 잡고 오리를 잡고 마을 한 구석에서는 돼지 한 마리쯤 잡아야 명절 분위기가 난다. 일년 동안 집에서 기른 짐승을 제물로 준비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송편을 빚는다고 준비를 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송편을 '송편'이라고만 부르지만, 전라도에서는 솔잎을 깔고 찐 떡이라 해서 '송편'이라 부르기도 하였지만, 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얼편'(월편)이라 부르기도 한다.

요새는 집에서 떡 찌는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방앗간에서 쪄 온 떡이 도착하자, 이 사람 저 사람 떡 맛을 본다.
'차말로 고물이 푸지다이, 그전에넌 고물 적은 지비서넌 양애 잎싹얼 너코 떡얼 해 묵고 그랬재.'

어머니는 옛 시절을 떠올린다. 부엌은 부산하다. '지지고 보끄고 디치고 무치고 티기고 찌고 더끄고 살무고' 제사상에 오를 음식이며 입 많은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기에 바쁘다.

'꼬막얼 살물때게넌 살째기 핏물이 돌만치 해사쓴다이.'

늘 해 보아도 실패하기 쉬운 것이 고막 삶는 일이다. 벌써부터 건넛방에서는 술판이 벌어지고, 객지에 나가 사는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술병을 들고, 대문을 들어선다.

'오매. 오냐?'
'이. 은제 왔냐?'

그나 나나 입에서 사투리가 틔어 나온다. 절을 받고 나서 어머니는, 술병을 가리키며 '무다라 이란 거슬 사가꼬 와쓰까이.' 타박 아닌 타박을 한다.
오랜만에 동네 방송이 왁자하게 퍼져 나온다. '거시기 원태 맹철이 지비서 디아지럴 잡고 있응께, 괴기 필요하신 냥반들은 가시기 바랍니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 명철이네로 향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올벼쌀을 씹어 먹으면서 마당에서 뛰어 논다.

'큰성은 온닥 합디요? 우짭디요?'
'못 온닥하드라. 이참에넌 아그덜이 하래배끼 학교럴 안 신다고...'

어느새 어스름이 깔리고, 한쪽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종이로 만들어진 그림딱지로 딱지치기를 하고 어른들은 화투를 가지고 딱지치기(빠이치기)를 한다.

그나저나 한국인들의 놀이 문화는 다양하기 그지없다. 단순한 화투 한 곽 가지고 만들어낸 놀이는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놀이도 표준이라는 것이 없다. 그것은 언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스톱 룰이 지역마다 다르듯이 재 하나만 넘어가도 언어의 변용이 나타난다.

아무리 늦게 잠들었어도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집안의 예법에 따라 상을 차리고 해 뜨기 전에 제사를 마친다. 음복에 아침을 먹고 술잔을 돌린다. 청주는 금새 떨어지고 막걸리로 바꾼 잔이 두어 잔 돌 무렵이면 마음 바쁜 숙부는 산에 가자며 마당에 서 있다.

최근에 와서는 성묘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지만, 나의 고향에서는 성묘 가자는 말을 따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산에 가자.' 그러면 말이 통했다. 명절날 산에 가자 하는 것은 무덤 앞에 가벼운 음식을 차리러 가자는 것이고, 벌초하러 가는 날엔 벌초를 하러 가자는 뜻으로 '산에 가자'는 말을 사용하였다. 산에 가는 것은 사실 조상을 만나러 가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랬는지도 모른다. 등산을 하러 산에 가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리라.

서둘러 산에 갔다 오니 점심참이 된다. 바쁜 사람들은 벌써 하직을 고하고,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끼리 윷판을 벌인다. '또다.' '때다.' 웃음소리 높아지고, '이. 엄버부러.' '윷이다. 자버 불고.'

높아지는 웃음소리처럼 환한 달이 떠오르도록, 집집마다 사람소리가 오랜만에 가득하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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