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축제, 명절
잃어버린 축제, 명절
  • 김호균
  • 승인 2001.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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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 추석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의미있는 생활문화기획이었다. 한해 동안의 숨가쁜 노동의 결실이 농경지에 드러나고, 들에 산에 과실이 무르익는 풍요로운 계절을 택하여 새로 거두어들인 알곡과 과실로 먹고 즐기고 조상에게 예를 올렸던 것은 육체적 노동에 대한 보상이자 정신적인 카타르시스였다. 추석은 우리 조상들의 삶에 매우 계획적으로 정교하게 기획된 축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된 이후 추석은 농경사회의 그것처럼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형식은 그대로 남아있으되 그 형식 속에 채워지는 내용들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나부터서도 나락 익는 모습이 아닌 상가 앞에 쌓여진 선물세트들을 보면서 추석이 가까이왔다는 실감을 했으니깐.

떡살을 불리고, 햇곡식을 고르는 대신, 커피, 식용유, 양주병들이 실용적이지 못한 케이스 속에 들어앉아 대량구매 고객을 기다리고, 택배맨들이 숨가쁘게 트럭을 모는 등등이 이번 주를 장식할 대표적 풍경이 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명절은 그렇게 새로운 나눔의 방식을 갈구하고 있다. 젓갈 세트, 술병, 하다못해 양말세트 속에서 무언가를 나눠보려 하지만 대체로 값을 치른 만큼의 보람도 돌려주지 않는 지극히 건조한 의례로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추석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 사실 빨간 날짜야 코가 시큰하게 반갑지만, 명절 연휴는 어쩐지 부담스럽다는 게 통설화되어있다. 명절 연휴 내내 부엌떼기 신세를 면키 어려운 대한민국의 여인네들은 여인네들대로, 아내의 노동량에 신경 써가며 빈둥거리거나, 하자니 불편하고 관두자니 서운한 인사치레에 신경 써야하는 남정네들은 남정네들대로 달가운 축제가 아니다.

한복을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윷놀이를 해대도 그닥 흥이 나지 않는 명절 특집 TV프로그램처럼 이 시대 명절은 참으로 뜨뜻미지근하다.
그래서 휴양지에서 연휴를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명절의 즐거움을 어떤 식으로든 누려보겠다는 궁여지책들일 터이지만 서민들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방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린 정녕 명절이라는 축제를 도둑 맞아버린 것일까. 떡 방앗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밀려둔 때를 한꺼번에 밀어내고, 팔을 걷어야하는 큼지막한 새 옷과 귀청 떨어지던 화약소리조차 즐거웠던 우리의 신명나는 축제 하나를 잃어버린 것일까.

문화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이건 하나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오랜 축제인 명절을 기쁨과 나눔의 축제로 복원하는 일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속놀이를 재현하는 것도 부분적일 뿐이고, 효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슬그머니 해보는 엉뚱한 생각 하나가 있다. 어차피 자본에 의해 잃어버린 명절이라면 자본에 역행하는 명절의 새 전통을 만들면 어떨까. 명절 연휴 동안은 TV도 쉬고, 차도 쉬고, 컴퓨터도 전화도 쉴 것. 모든 소음은 멈추고, 일체의 거래는 중지할 것. 그리하여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어볼 것, 그날은 결코 새로 음식을 장만하지 말 것, 대신 냉장고에 묵혀둔 것들을 꺼내서 깨끗이 먹어치우고 마음까지 비울 것. 선물을 사서 쓰지 않고 처박아둔 물건을 찾아내어 이웃과 나눌 것, 마음에 묵혀둔 상처들을 꺼내어 말끔히 씻어낼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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