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잘 쓰는 내 아이…한달 전 일도 조금전 일도 '아까침에'
사투리 잘 쓰는 내 아이…한달 전 일도 조금전 일도 '아까침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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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의 전라도 말 사잇길>

내게는 네 살 난 아이가 하나 있다. 녀석은 사투리를 곧잘 쓴다. 아내의 친구들은 녀석이 사투리를 섞어 한마디씩 할 때마다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아빠. 아까침에 사탕 묵어부렀다.' '엄마. 신발 너나부러.' 이런 식이다.
아직은 말도 제대로 여물지 않았고 사투리 구사도 적확하지 않는 표현이 많다. 그 중에도 유독 많이 쓰이면서 잘못 쓰이는 단어가 '아까침에'이다.

한번은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아빠. 아까침에 여그 왔지이?' 그러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였다. 생각해 보니, 그 길은 한 달쯤 전에 같이 걸었던 곳이었다.

또 한번은 지나가는 버스를 보면서, '아까침에 엄마하고 버스 타고 가게 갔다아.' 그랬다.

아까침? 언제?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헷갈리지 않는다. 녀석에게 있어서 '아까침에'라는 단어는 지나간 모든 시간을 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투리 '아까침에'에 대응하는 말을 표준말에서 찾으면, '아까'라는 단어가 있다. '아까'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금 전'이라고 풀어져 있다. 그러나 '아까'에 대응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아까침에'가 있지만, 두 단어가 지닌 뜻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까'라는 말이 막연히 조금 전에 지나간 시간을 뜻한다면, '아까침에'는 조금 전에 지나간 시간 중 '일정 부분'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아까'라는 말이 관념화된 시간의 뜻이 강하다면 '아까침에'는 풍경이 연상되는 시간의 의미가 있다. 시간 속에 공간이 개입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을 전라도 말의 한 특성으로 생각을 하는데, 시간을 뜻하는 말에 이미 공간의 의미가 겹쳐 있는 말들이 많은 것이다.

'아까침에'는 지역이나 개인에 따라서 '아까칙에' '아까참에'가 사용되기도 한다. 뜻은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까만치'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아까침에'나 '아까참에'보다 더 지난 시간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그렇다고 두 시간 이전의 시간을 '아까침에'라고 하고 두 시간이 초과된 지난 시간을 '아까만치'라고 한다든가 하는 기준은 없다. 시간의 문제는 시계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이다.

'아까침에'라는 말은 아무래도 '아까참에'가 변형된 말인 것 같다. 전라도 사투리 중에는 '-참에'라는 말이 발달되어 있다. '-참'은 '-무렵'이나 '-때'를 뜻하는 말이다.

친구와 술자리 약속을 할 때 서울 사람들은 '그래. 저녁에 보세.' 할 말을 전라도 사람들은 '이따. 정참에 보세.' 식으로 말을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정참'이란 저물 무렵을 뜻한다. 그리고 '정참'보다 더 늦은 저녁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저닉참'이라는 말이 쓰인다.

이외에도 '새복참'이나 '점심참'이라는 말들이 있고, '새참'이라는 말에는 '때'라는 명사가 더 붙어서 '새참때'라는 말이 쓰인다.

그렇다고 '-참'이라는 말이 '-무렵'이나 '-때'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와마. 이참에는 기언치 합격 해사재.' 라고 말했을 때의 '-참'은 표준말 '-번'과 통한다. '이참' '저참' '다음참' 등의 말이 그것인데, '-번'이라는 말과 반복하여 '이번참' '저번참' 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전혀 다른 뜻으로 '-참'이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인자 니가 할 참이다.' 같은 경우인데, 이때의 '-참'은 '차례'의 뜻을 지닌다.

티브이를 보고 있던 아이 녀석이 곁에 와서는 '아빠 아까침에 미끄럼틀 탔따아.' 하면서 자랑을 한다. 녀석의 머리 속에는 지나간 막연한 시간보다는 '좋았던 풍경'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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