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죽지 않았어
고흐는 죽지 않았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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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 - 고흐, 까마귀 날으는 보리밭 (1890)>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서툴까…. 심지어 총 쏘는 것조차 그래." 고흐가 권총 자살을 하기 며칠 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글이었답니다.
아마도 머리에 총을 겨누고 이렇게 쏘나, 저렇게 쏘나 어지간히 궁리를 했던 모양입니다.

늘 사랑은 실패하고 전도사가 되겠다는 꿈도, 가난한 사람을 대변해 보겠다는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소망조차 다 좌절된 그는 동생 테오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채 살아갑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완전한 실패로 인정하고 권총으로 그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렸던 그림들은 당시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그의 그림 한 작품 값이 어지간한 빌딩 한 채 값을 호가할 만큼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요?

가끔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사랑한다기 보다는 광기 어리고, 생의 집착이 오히려 유달랐을 그의 굴곡진 삶에 높은 액수의 값을 매김질 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그 선연한 노란색감이 주는, 너무 밝아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보리밭의 쓸쓸함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광기마저 아름답게 채색할 줄 알았던 그의 천재성이 문득 느껴집니다.

그러나 고흐의 천재성을, 아니, 그 앞서가는 터치를 그 시대의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주질 못했습니다. 물감 하나를 거의 그대로 짜발라놓은 듯한 거칠고 투박한 보리밭이 그냥 보리밭을 그린 게 아니라 두껍고 내리누르는 삶이란 압박을 펼쳐놓은 것이라거나, 혹은 그 날아가는 까마귀가 그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고흐 자신의 예민해진 감수성을 그려놓은 건지도 모른다는,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시각을 당시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아니,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을테니까요.

고흐가 살던 시기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한참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인상주의자들 역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늘 사이더로 있어야 했지요. 그림이란 것은 그저 대상과 비슷해 보이도록 그려져야 한다. 다만 좀 더 아름답거나, 좀 더 고상함으로서 그림된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바로 그런 시절에, 고흐 역시 보통의 그림쟁이들이 인정하는 그런 그림들을 그려보려 애를 쓰기도 했지요, 초기 작품들은 밀레처럼 따라 그려보기도 했구요. 파리에 머물던 시절엔 파리 특유의 그 전위적 정신을 좇아, 점묘파 화가들을 흉내내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그 모든 흉내내기가 힘겨웠나 봅니다.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었겠지요. 왜 난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그릴 수 없을까라는 좌절감이 그를 힘겹게 했겠지요. 나는 왜 밀레처럼, 혹은 나는 왜 쇠라처럼, 나아가 나는 왜 고갱처럼 되지 않는가!

고흐는 아마, 그런 자신을 서투르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화가의 길을 접었을 지도 모르지요. 그 가여운 천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 세계를 이해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는 아마도 이렇게 외쳤을 것 같네요.

"나, 드디어 총 쏘는 법을 알았어"
천재는 혼자 죽지 않습니다. 다 같이 죽이는 거죠. (cyberjubu.com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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