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헤라와 함께 한 지난 여름
제우스·헤라와 함께 한 지난 여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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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로마신화' 이윤기/웅진닷컴>

이번 여름방학은 <그리스 로마신화> 돌풍이 불었다. 서점마다 그리스 로마신화 판매대가 따로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고, 예술의 전당에 [그리스로마 신화전]에는 그야말로 발 딛을 틈이 없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야말로 작전세력의 냄새도 좀 났지만, 그 덕분에 나도 그리스 로마신화 몇 권을 읽게 되었다.

가장 먼저 잡은 책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웅진닷컴, 1만2천원). 예전에 교육방송에서 이윤기씨의 해박한 신화 설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던 터라 얼른 구입해서 읽었다.

그런데, 그 신화라는 게, 읽을 때는 정말 재미있는데, 돌아서면 그 신이 그 신인 것 같고, 그 이름이 그 이름인 것 같아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난 내 머리탓을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에 한꺼번에 2백여 명의 신이라니... 아이 셋을 낳은 내 뇌는 그 정도엔 이미 파일정리가 불가능해 불러오기가 안 된다.

그래서 다시 들게 된 책이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토마스 불핀치 지음, 홍은영 그림, 가나출판사, 현재 1 - 7편까지 출판되었고 각권 8천5백원이다)였다. 어릴 때 읽던 순정만화가 생각날 만큼 예쁜 그림들도 날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 책을 사오자마자 일곱 살 짜리 아들놈이 먼저 집어든다. 그러더니 하룻만에 나보다 앞서서 다 해치우는 것이다. 그리고선 방학 내내 그 책만 들고 살았다. 날마다 엄마 아빠와 동생을 앉혀 놓고 그리스로마신화 퀴즈대회를 연 덕분에 온 식구가 열두 신 정도는 외우게 되었다.(그 정도가 아니다. 아이들은 이상한 곁가지들에 집중을 한다. 예를 들면 '머리가 파란 색 신은?' 이라고 묻는다거나 ...)

만화를 통해서 제우스, 포세이돈, 헤라, 데메테르,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아테나,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헤르메스 등 열두 신과 가계도 정도를 정리하고 나서 이윤기의 책을 집어들었더니 이제야 이해도 조금 되고, 내용과 함께 수록된 수많은 그림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그림들도 몇 가지 족보를 가지고 있으면 이해가 더 쉽다. 예를 들어 대충 벗고 몸매자랑을 하는 것 같으면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이고, 활을 들고 나오면 태양의 신 아폴론이고, 공작새와 함께 나오거나 붉은 망토를 걸치고 나오면 헤라이고, 삼지창을 가지고 나오면 포세이돈이고, 벼락을 들고 있으면 제우스이고...)

이 책 덕분에 우리 가족도 올 여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신들과 함께 살았다. 술 냄새를 풍기면서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도끼눈을 뜨고 '어디서 뭐 하다가 이렇게 늦었어?'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이 사람아, 에로스가 떠나면서 프쉬케에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사랑은 결코 의심과 함께 할 수는 없다>고 했어.'라고 대답한다. 갑자기 무척 예술적 소양이 높은 남편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그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물리칠 때 '성기를 잘랐다'는 표현이 나온 것을 보고 "엄마, 성기가 뭐에요?"라고 묻고, 이윤기의 책을 보더니 "엄마, 근친상간이 뭐예요?" 라고 묻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술의 전당에 [그리스로마 신화전]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설명해주는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제우스를 설명하기 위해 묻는다.

"애들아, 제우스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뭐지?"
우리 아들, 전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가장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바람 피우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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