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배후 혐의 ...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
테러배후 혐의 ...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정부의 공적(公敵) 1호로 낙인 찍힌 중동의 테러리스트


미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내건 사상 최고의 현상금 5백만 달러의 지명 수배자이며 중동 테러의 배후 인물인 오사마 빈 라덴. 10여 년간에 걸친 대미 테러로 미국 내는 물론이고, 전세계 미국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달 5일, 미국의 뉴욕 주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에서는 전 미국과 지구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재판이 열렸다. 1998년에 있었던 아프리카 주재 미국대사관 폭탄테러 사건의 용의자들에 대한 재판이었다.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약 9개월이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맨해튼 연방지법 건물 주변에는 테러 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해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주변 상황을 초정밀 카메라로 감시함은 물론, 7t 이상의 트럭이 시속 120㎞로 돌진해와도 끄떡없을 정도의 강력한 바리케이드까지 설치하였다.

재판을 받는 용의자들은 레바논계 미국인 와히드 엘-하지(40)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인 라시드 알-오왈리(24), 탄자니아인 칼리판 카미스 모하메드(27), 요르단인 모하메드 사디크 오데(35) 등 4명이다. 이 중 알-오왈리는 케냐 주재 미 대사관 폭탄 테러에 가담했던 사실을 FBI 조사 과정에서 자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재판이 지구촌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배후 인물이 대미(對美) 중동 테러의 주동자라 불리는 ‘오사마 빈 라덴’(Usama Bin Laden)이기 때문이다.

대(對) 미국 중동 테러의 핵심,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 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아라비아 최대건설업체인 ‘빈 라덴 그룹’소유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생계에 어려움이 없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에 심취하며 자랐다.

그의 나이 22살 되던 1979년, 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철저한 회교 원리주의자였던 라덴은 회교 국가는 이슬람인들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슬람 동포를 위한다는 구실로 사재를 털어 ‘알 콰이다(이슬람 구제기금)’를 설립하였다. 그런 뒤 아프가니스탄의 회교 반군 지도자 탈레반에게 자금과 무기 등을 지원하였으며, 1986∼1989년에는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가하여 아랍 국가들로부터 ‘아랍의 영웅’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회교 원리주의 운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이 사우디에 주둔하자 반발하여 반정부·반미 활동을 즉각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91년에 결국 사우디에서 추방당했다.

이 사건은 라덴에게 있어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슬람 사회를 파괴하는 원수 국가로 규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과 미국의 악연은 이렇게 맺어졌다.

수단으로 쫓겨난 뒤에도 반미 운동을 멈추지 않던 그는 1994년, 마침내 조국 사우디 정부에 의해 국적을 박탈당한다. 라덴은 자신의 도움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자가 된 탈레반의 비호 아래 1996년부터 현 근거지인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의 갑부인 그의 아버지 무하마드 빈 라덴의 사망으로 물려받은 유산 3억 달러를 반미 테러를 위한 무기 구입과 아프가니스탄 반군 세력을 유지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본거지를 옮긴 라덴은 ‘아랍을 오염시키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선포한다. 이후 세계 여러 곳에 테러리스트 양성소와 생화학 무기 공장을 만들어 1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대미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미 정부가 라덴의 목에 내건 현상금은 5백만 달러이다. 라덴은 또 인터넷 전자우편으로 테러 목표와 작전을 지시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세계적인 인명록인 후즈 후(Who’s who?)에도 ‘테러 주모자’로 이름이 올라 있을 정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아들 결혼식 참석 후 유유히 사라지기도

지난 1월 9일, 미국의 정보기관을 비웃기나 하듯 오사마 빈 라덴은 아들의 결혼식장에 나타났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랍에미리트의 알 자제라는 위성방송사는 1월 10일 뉴스 보도를 통해 결혼식 장면을 방영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아들 모하메드 빈 라덴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2년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라덴은 지난해 미국 언론이 신장과 간장질환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한 것과는 달리 밝은 표정과 건강한 모습을 과시했다.

예식은 억만장자의 아들 결혼식답지 않게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날 라덴에게서 투쟁적인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비록 복면을 한 경호원이 따라다녔지만 아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평범한 아버지로서 행동했다. 라덴은 무기를 지니지 않았고 미국을 비난하는 등의 과격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문화적인 관습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신부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방송사는 결혼식 장면을 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하였다. 사돈을 맺은 알 마스리는 라덴의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알콰이다의 주요 멤버 중 한 명이다. 이들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전투에 참전했던 절친한 사이이다. 신랑과 신부는 이들의 2세들이다.

라덴은 3명의 아내(이슬람교에서는 아내를 4명까지 허용하고 있다)와 13명의 자녀가 있는데 이번에 결혼한 모하메드 빈 라덴은 아버지 라덴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2세대 테러리스트이다. 그리고 이날 결혼식에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암살과 관련된 테러 조직인 이집트의 ‘지하드’ 주모자 아이만 엘 자와히리가 하객으로 참석하여 동반관계라는 것을 재확인시켰다.

세계 각처에 산재한 무장테러 조직단체, ‘알 콰이다’

1988년, 라덴은 사설후원재단에 불과했던 ‘알 콰이다(Al Qaida)’를 무장 테러조직으로 재정비했다. 그밖에도 그는 체첸과 필리핀, 발칸반도 등지의 이슬람 조직에 자금 및 군사훈련을 지원하기도 했다.

1991년, 구 소련이 붕괴되자 고성능 소련제 무기들이 국제 무기 암시장에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 무기들을 흥정하여 싼값에 챙긴 주요 고객은 중동의 테러집단들이었다. 소련제 고성능 무기 확보로 인해 1992년부터 이들 테러조직이 자행하는 테러의 강도 또한 점차 강력해지고 있다.

그 중 라덴이 이끄는 알 콰이다의 테러 양상이 심각하게 드러난 것은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 때부터다. 테러 대상도 개인과 단체, 건물 등 가리지 않고 미국 정부와 연관된 것이라면 무차별적으로 가해졌다. 이어 1996년 사우디 다란 소재 미군막사 폭탄 테러,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 대사관 폭탄테러 사건, 그리고 지난해 미 구축함 콜호 폭파테러 등 알 콰이다가 직접적으로 밝힌 것 외에도 다수의 대미(對美) 테러를 지원한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 사건 이후 테러를 배후에서 지시한 테러리스트의 신분과 조직이 노출되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자국을 향한 일련의 테러가 알 콰이다를 이끄는 오마사 빈 라덴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미국 정부는 중앙정보국(CIA)의 정보망을 가동해 그에 대한 정보 수집에 착수하였다. CIA에 입수된 내용은 아프리카 수단에 라덴 소유의 생화학 무기공장이 있으며, 유럽, 예멘, 파키스탄, 레바논, 필리핀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테러리스트 양성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슬람 민족국가들이 비공식적인 후원과 활동에 대해 묵시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라덴을 지지하는 이들은 전세계의 수니파(Sunni:이슬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극단적인 강경파) 극단주의자들로 밝혀졌다.

다른 테러집단과 달리 라덴의 알 콰이다는 사전 경고 없이 테러를 감행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최근 들어 미국 정부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까닭은 1998년을 전후로 하여 테러용 무기가 재래식 무기에서 화학제, 생물학제, 방사선물질제, 또는 핵제(CBRN)로 전환하고 있다는 첩보가 접수됐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라덴은 유독성 화학제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2000년 2월 3일 CIA국장 조지 테닛이 상원 군사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라덴의 테러 요원들은 유독성 화학제나 생물학 독소제를 가지고 공격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신형무기로 무장한 테러 병력은 약 5000명 정도로 규모가 대단하다. 특히 이집트와 예멘, 수단 등 중동 및 아프리카 각국에 자신의 지지세력과 강력한 유대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CIA와 FBI에서도 그 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라덴의 알 콰이다 조직이 전세계 어느 지역에 산재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이 조직의 테러가 언제나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덴의 영원한 동지 탈레반의 고민

미국은 유엔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라덴을 인도하거나 추방하라고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자 탈레반은 의리 하나로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보호도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탈레반이 라덴을 보호해주고 있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라덴을 이슬람 단결의 상징으로 자국민의 지지 홍보용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라덴을 순순히 미국에 내 줄 경우에 탈레반은 전 이슬람세력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로 인해 국내 지지세력 또한 와해되어 내분이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탈레반은 유엔으로부터 금융거래와 항공운항 금지 등의 제재를 받고 있다. 전 국토의 90%를 장악하고도 아직 국제사회에서 공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더구나 탈레반의 동맹국이자 후원국인 파키스탄마저 라덴을 추적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국제사회에서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눈총을 피하기 위해 탈레반은 전화, 팩스 등 라덴의 모든 통신수단을 철거시켰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유엔 경제 제재조치가 시작되기 전 탈레반 정부의 와킬아흐메드 무타와킬 외무장관은 뉴욕의 유엔센터에서 “국제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결코 미국에 인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엔의 경제 제재가 시작된다 해도 우리는 오사마 빈 라덴을 추방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자유롭게 남아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교도의 나라에 라덴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덴의 신병을 요구하며 아프가니스탄 제재 조치를 한층 강화할 목적으로 유엔 안보리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다. 탈레반 정부에 추가된 제재 조치는 무기 수입금지,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리들의 해외여행 제한, 외교공관 인원축소 등으로 강화되었다.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을 두고 이래저래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라덴의 영원한 동지로서 남을 것인지 배반의 오명을 달게 받고 국익을 위해 그를 추방할 것인지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탈레반은 지금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라덴의 테러, 심증 가지만 물증이 없다

지난해 10월 13일 동틀 무렵, 예멘의 아덴항에서 바다를 뒤엎을 듯한 커다란 폭발이 있었다. 연료를 보급 받기 위해 정박해 있던 8300톤급 미(美) 구축함 콜호를 향해 돌진한 소형 선박에 의한 폭탄테러였다. 콜호는 왼쪽 측면이 흉측하게 파괴되었고, 이 사고로 17명의 사망자와 3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다음날 예멘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는 기자 회견을 통해 “콜호의 테러가 오사마 빈 라덴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 하지만 미국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범을 체포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FBI와 특급 수사대가 긴급하게 아덴항으로 투입되었고, 수사가 착수되는 동안 파손된 콜호는 흰 방수천에 덮여졌다.

예멘에서 수사를 지휘하던 FBI 뉴욕지부장 존 오닐의 발빠른 조사 끝에 콜호 폭탄테러범 용의자 6명을 체포했다. 이에 ABC 방송은 체포된 두 명의 용의자가 라덴의 동아프리카단체 소속원들과 접촉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FBI는 테러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 가운데 한 명인 자말 알 베드위는 자신이 아프가니스탄의 라덴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또 다른 용의자 파드 알 퀴오소는 콜호 폭파사건에 사용된 거액의 자금을 라덴의 알 콰이다가 지원한 것이라고 자백했다. 그러나 이들 용의자들은 라덴이 테러 명령을 지시했느냐는 FBI의 심문을 받고 한결같이 부인했다. 이로서 라덴이 테러를 지시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려 했던 FBI의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테러범들의 자백을 기회 삼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라덴의 캠프를 보복 공격하려 했던 미국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각종 미국 관련 테러들을 면밀히 조사해 보면 오사마 빈 라덴이 사건의 배후 조종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배후자로 지목하기엔 물증이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폭탄 테러 현장에서 테러리스트들은 자살특공대 형식으로 자폭 또는 자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지령을 내린 배후 조종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술과 증거가 없다. 그래서 라덴이 체포되어 신변이 확보된다 해도 법정에 세울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미국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1999년에 워싱턴포스트지는 케냐 나이로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 1주년을 맞아 특집기사를 실었다. 여기서 대(對)테러 전문가인 비리안 젠킨스는 “라덴이 미국에 대한 모든 테러의 배후로 의심받는다는 사실은 너무 비현실적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라덴이 중동과 미국 등지에 그만큼 강력하고 뿌리깊은 테러 조직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CIA의 주장에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CNN은 미의회 조사국의 정보분석가인 케네스 카츠먼의 말을 인용하면서 라덴은 라틴 아메리카와 멕시코, 중동은 물론 심지어 워싱턴까지도 공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카츠만은 라덴이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금융기관들을 테러 대상으로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우려했다.

젠킨스와 카츠먼 가운데 과연 누가 라덴과 알 콰이다를 정확히 평가한 것인지 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젠킨스와 같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라덴에 대한 결정적인 물증 확보는 상당 기간 지체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테러리스트들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을 세운 나라다. 그만큼 테러에 대해서는 강경하고 정권이 바뀐다해도 그 정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아무런 물증 없이 라덴의 거점을 공격하기에는 미국이 국제사회에 내놓을 명분이 빈약하다.

현재 중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어렵게 성사된 평화가 무너져 다시 유혈의 위기감과 대립이 팽배하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중동 평화를 가로막는 강경파’라는 주제로 기획기사를 실었다. 그 첫 번째로 선정된 인물이 오사마 빈 라덴이고, 두 번째 인물이 최근 이스라엘의 신임 총리로 당선된 아리엘 샤론이다.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의 자치구역인 서안과 가자 지구 그리고 회교사원이 있는 예루살렘의 성전산까지 점유해야 한다고 강경론을 펼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과 유대인들을 향한 테러를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한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지원하는 다혈질적인 아랍국가들은 또 다른 테러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사마 빈 라덴이 다시 대미(對美) 테러의 불을 놓는다면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기름이 되어 달려들 것이다. 아마도 격앙된 어조로 라덴의 모든 거점에 융단 폭격을 하라는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중동은 벌집을 쑤신 듯 한동안 그 여파로 전세계가 들썩일 것이다. 지금 지구촌은 먹구름 가득한 하늘처럼 겉잡을 수 없는 분쟁과 테러로 얼룩지고 헝클어져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