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헤어나오기 싫은 소설 중독증에 빠져 있다
나는 헤어나오기 싫은 소설 중독증에 빠져 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금 전까지, 나는 사고로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된 남편을 둔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기를 서슴지 않는 여자였는데, 가만 가만 털어놓는 속내를 짚어보니 못내 가엾다. 그 여자는 지금, 결혼 전에 남편(그때는 남자친구였겠다)과 처음 살을 섞었던 '모텔 알프스'로 돌아가 방 청소나 해주는 아줌마가 되었단다. 정말로 남편이 죽었으면 하지만, 건강했던 시절 남편의 싱싱했던 몸, 그리고 그 몸과의 추억을 아직 사랑한다. 아무렇게나 풀어져 있는 남편을 알몸으로 껴안고 울기 시작하는 그녀를 더 이상 보기 민망해 슬그머니 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김인숙, [모텔 알프스], {현대문학} 9월호)

소설을 통해 만나본 수많은 사람들,
둘러본 풍경, 들어본 이야기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몇 시간쯤 전에, 또 나는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진보적 사회언어학자 피터 버갓과 힘겨운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그 작자는 알려진 바와는 반대로, 반유대주의자에다 신나치주의자, 게다가 은근히 돈까지 밝히는 속물 중에서도 왕 속물이었다. 실망이 컸다. 문제는 그를 대하는 이 나라 대통령이나 문화관광부 장관, 언어학자들의 태도다. 사대주의자들……. 심히 불쾌하다. 그가 탄 비행기가 제대로 미국에 도착하지 못하기를……흐흐.(고종석, [피터 버갓씨의 한국일기], {문학동네} 가을호)

한 2주일쯤 전, 신대리에서 '피눈물(피도 눈물도 없는 고양이)'이란 자가 동네 건달 여섯과 벌였던 일전(一戰)은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이야깃거리다. 구경꾼들이 많았으니 나 외에도 그 싸움 장면을 보거나 들은 이들이 많을 줄 안다. '피눈물'의 몸이 잠시 허공에 떴다 싶기가 무섭게, 그의 두 발이 하나는 두목 왼쪽의 똘마니 턱에, 하나는 두목 오른쪽의 똘마니 뒤통수에(그려보라, 그 자세를!) 약 0.005초간 머물렀다.

그리하여 두 똘마니는 억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나동그라지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나동그라지는 순간은 또한 피눈물이 가운데 서 있던 두목의 양쪽 뺨을 각각 두 차례씩, 그것도 방금 똘마니중 하나의 뒤통수에 가 있었던 왼쪽 발로 후려치는 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두목이 병원에 실려가면서 물었다. '분하구나! 니가 방금 사용한 발차기가 뭐냐?' 물론 피눈물은 그 자리에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까우가 뭔지를 아는 인간이다), 그런 싸움판을 자주 구경해 본 나는 안다. 물긷고, 가마니짜고, 나무하고, 밭갈면서 터득한 '정통농업무술'이라는 것을.(성석제, {순정}, 문학동네, 2000)

소설을 많이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


얘기하자면 '끝도 갓도 없다'. 요컨대 나는 어쩌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하나인 것인데, 오로지 소설을 많이 읽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소설 읽지 않는 이가 평생을 만나 본 사람들, 평생을 들어본 이야기들, 평생을 둘러본 풍경들보다도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와 풍경들을, 많지 않은 삼십대의 나이에 다 경험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글만 다 쓰면 또 중세의 장원으로 심부름꾼 소년을 만나러 가거나(백민석,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문학동네), 물의 말을 들으러 가거나(박정애, {물의 말}, 한겨레신문사) 풍금이 있던 자리에 핀 바이올렛(신경숙, {바이올렛}, 문학동네) 꽃향기를 맡으러 갈 참이다. ……흐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