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글고, 물 먹이는 '덕만이네'
맹글고, 물 먹이는 '덕만이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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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회령에 특이한 문패의 집이 있다. '맹글고 물먹이는 덕만이네'가 바로 그것. 이 집은 영광 정씨 종가집이지만 살고 있는 이들은 정씨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이다. 목수인 김광철(37)님은 '맹그는' 사람이고, 천연염색가 김희덕(34)님과 김연대(32)님은 '물먹이'는 사람이다.

김희덕님의 어린시절 동네에서 부르던 이름이 바로 덕만이. 오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오면서 그는 옛날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사는 곳에 '맹글고 물먹이는 덕만이네'라고 이름 붙였다.

서로 핏줄로는 얽히지 않은 이들이 이 집에서 끈적한 인연을 맺게된 사연은 이렇다. 2년여 전, 목수인 김광철님이 부산에서 해운정사 3층 목탑을 지을 때, 김희덕님과 인연을 맺게되었다. 생각과 삶의 방식이 같아서일까.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함께 지낼 수 있을 만큼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단다.




약도 주지 않고 김매기도 자제
풀도 뽑지 않고 잘라 뉘어놓고
할랑할랑 한가하게 농사 짓는
'태평농법'은 상생의 실천


광주 첨단지구에 있는 무양서원에서 함께 거주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소개받았다. 집주인이 도시에 나가게 되었단다. 비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들어와서 살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있고, 염색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하다. 거기에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면 남해바다가 지척이다.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살기로 했다.

천연염색가 정옥기님의 소개로 김연대님과 인연이 맺어졌다. 그의 아내 강희순(28)님과 5개월 된 아들 준헌이도 함께 한다. 이 가족이 들어오던 날, 살구라는 이름의 여성이 소문을 듣고 합류를 했다. 이만하면 농사짓고 염색하기에 충분한 손이다. 이모님은 식구가 가장 많은 집의 대장이라며 동네사람 앞에서 큰소리가 대단하다. 노인들만 있던 시골동네가 시끌벅적하다.

덕만이네는 태평농사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말 그대로 태평하게 할랑할랑 걸으며 농사짓는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태평농법. 땅을 갈지도 비료를 주지도 약을 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김매는 것도 자제한다. 풀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풀이 우세하지 않게끔 조절한다. 뿌리 채 뽑으면 벼 뿌리마저 흔들린다고 위로 나온 풀을 잘라주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게 자른 풀도 벼가 자라는데 방해되지 않게 돌돌 말아 그 옆에 눕혀둔다. 시간이 지나면 그조차 거름이 되라고... 말 그대로 공존, 더 나아간 상생이다.

천연염색도 함께…더불어 살기

더불어 살아가는 것. 농사를 지으며 땅을 만지며 그 이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른 어떤 것, 생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배타적으로 살고 있는가. 그러한 분별심으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가. 흔히 잡초라고 쓸모 없는, 그래서 없애버려야 한다는 사고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세상 모든 것은 귀한 것,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듯 하다. 내다 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먹을 만큼만 생산하려고 하는 덕만이네의 논과 밭은 조화롭다. 벼와 풀, 꽃, 열매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이들에게 문명의 전환이니 삶의 이데올로기의 전환이니 하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단지 흙이 좋고 사람이 좋아 자연의 품안에서 살고 싶어하는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온 우주가 들어있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온몸 전율하듯 느끼며, 그 열정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 그 삶 속에 우리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들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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