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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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박찬호 야구' 보는 재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잘 던진 박찬호의 승리 전을 마무리 투수가 잘못하여 역전되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말로 헤아릴 수 없다. 반면에 '핵 잠수함'이란 별명을 가진 김병현이 깔끔한 마무리 승수를 쌓아 갈 때 우리는 야구의 색다른 진수를 맛보고 희열을 느낀다.

새 학기초를 맞이하면 대학은 정년을 맞아 퇴임하는 교수님들의 퇴임식이 자주 열린다. 20-30년을 오로지 한 직장에서 제자들 가르치고 학문 연구에 진력하다 물러나게 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한 인간이 65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세월의 갖은 풍파를 이겨내고 이제 아름다운 마무리의 마침표를 찍고 표표히 떠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생존 자체가 문제되었던 지난 험한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더욱 경이롭기까지 하다. 허풍스런 화려한 출발 보다 깔끔한 마무리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엊그제는 여름학기 졸업식이 끝난 오후 교정에서 배가 만삭인 여인이 그 남편인 듯한 남자의 도움을 받으며 사각모를 쓰고 함박웃음을 웃으며 사진을 찍는 정겨운 모습을 보았다. 그 한 컷의 사진의 속에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학업의 한 과정을 끝낸 뿌듯한 모습의 한 여인과 말없는 남편의 외조가 아름답게 어울러졌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도중하차 할 수 있는 많은 유혹과 시련을 견뎌낸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우리 나라 사람은 대체로 마무리에 서툴다. 정치가들의 화려한 선거 공약도 임기말이 되면 용두 사미 되기 십상이고 거창한 계획일수록 그 결과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사람 사이에도 처음 만날 때는 간도 내줄 것처럼 다가오다가 끝날 때는 원수가 되어 헤어진 경우도 주변에 많다. 거창한 도입 부분으로 시작된 TV드라마나 소설도 마지막 끝날 때는 맥없이 긴장이 풀어져 버릴 때가 종종 있다.

마무리의 중요성은 물건과 제품에서 더욱 실감난다. 외국에서 우리 나라 전자제품과 일본 제품이 나란히 놓여 있는 진열대를 보면 일본 사람들이 투박한 우리의 일 처리에 비해 얼마나 깔끔하고 정교하게 마무리처리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진정 가치 있는 문화재란 정교함과 섬세함에 있을 텐데도 우리는 아직도 '동양최대'' 세계최대'란 양적 크기에 매달리는 것은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의 천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덴마크의 '레고' 장난감 회사의 어린이 완구 제품은 모든 각을 이루는 이음새 부분을 어린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부드럽게 깎아 처리해서 완벽을 기한다. 이 회사는 장난감으로 세계에서 가장 어린이 친화 기업의 하나가 되었다. 독일의 상징인 '벤츠'자동차 회사는 우리 나라에서 보면 쓸데없는 인력이 콘베이어 벨트 작업 중간 중간에 많이 서 있다. 이들은 작업라인 중간에 서서, 수시로 아주 작은 실수나 세밀한 흠도 찾아내어 다시 재 작업을 시키게 한다. 이러한 면밀한 감독과 제어 장치가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생산하게 만든다.

요즘 염주동 월드컵경기장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우리 아파트 창틀 끝에 뭉쳐 있는 시멘트 덩이나 매끄럽지 못한 문틀 끝을 보며 경기장 마무리 공사를 우려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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