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동굴에서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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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일주일간, 한국의 젊은이들과 일본의 대학생, 그리고 오키나와의 대학생 약 40명이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2차대전 전적지를 되돌아보고, 동아시아의 평화문제를 토론하는 캠프에 참가했다. 전에도 두어차례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이 섬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 중의 하나가 오키나와 중부의 요미탄 촌에 있는 유명한 치비치리 동굴에서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젊은 시절, 일장기를 태우면서 일본 군국주의에 반대한 경험이 있는 지바나씨의 설명은 제국주의와 평화, 그리고 인간의 문제에 관한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했다.

그러니까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넉달 정도 남았던 1945년 4월, 미군은 오키나와 중남부에 상륙했다. 요미탄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육을 받은 대로 마을 주변의 동굴에 피신했다. 미군은 동굴 속에 주민들이 피신해있는 것을 발견하고 손들고 나오면 살려준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을 "귀축"으로 표현했다. 도깨비나 야수같은 "미국놈들"한테 들키면 무참하게 살해되므로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황민화 교육에 의해 완전히 세뇌당한 주민들 약 150명은 끝까지 버텼다. 노인 둘이 죽창을 들고 덤비다가 미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동굴 속의 주민들은 패닉 상태가 되었다. 주민들은 생후 3개월짜리를 포함하여 약한 어린아이와 노인들부터 죽였다. 끝까지 버티는데 이들은 장애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차례로 83명을 죽였다. 끝까지 죽는 것을 주저한 나머지 주민들은 손들고 나와 목숨을 건졌다.

이 이야기는 집단적 비밀이 되어 함구되어 오다가 수십년만에 진상이 밝혀졌다. 지바나씨는 이 사건을 지칭하는 "집단 자결"이라는 말은 틀린 용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자아"가 전연 없고 단지 이들을 지배한 타아, 즉 천황제 군국주의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같은 마을의 또 다른 동굴에 숨었던 주민들은 모두 무사히 살았다. 같은 마을 사람인데 왜 한 동굴에서는 몽땅 떼죽음을 하고, 다른 동굴에서는 모두 목숨을 건지게 되었을까. 다른 이유는 없고 딱 한가지, 지도자의 문제가 있었다. 치비치리 동굴에는 중국전에 참전했던 간호부 출신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일본군이 중국인들에게 가한 학살을 알고 있었다, 같은 인종들간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다른 인종인 미군은 자신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너무 뻔하므로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주민들을 선동했다.

이에 비해 다른 동굴에는 하와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미국을 조금은 알았다. 이런 지도자의 경험의 차이는 두 동굴의 운명을 정반대의 길로 가게 유도하였다. 한 쪽에서는 살기 위하여 들어갔다가 모두 죽어서 나온 반면, 다른 동굴에서는 넓은 세계에 대한 조그만 경험이 모두를 살려서 보낸 셈이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오키나와의 환경을 파괴하는 최대의 적으로 지목되고 있다. 참 희한한 것은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를 보고 있노라면, 동아시아 지역체제의 최전방에 한반도가 있는 것이 잘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헤게모니하의 한반도 말이다. 오키나와가 한 때 미국 땅이 될 뻔했던, 일본 아닌 일본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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