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강항(4)
길 위의 호남 선비,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강항(4)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12.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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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영광군 내산서원 전시관에서 ‘오즈(大洲)에서의 억류생활’, ‘적중봉소’, ‘홍유 강항 현장비’ 등의 전시물을 보았다.

오즈성에 끌려온 강항은 1597년 동지(冬至)를 맞았다. 울적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금년에는 일편단심 눈물 흘리네. 今年流落丹心在

오늘은 솟구치는 수심만 가슴속에 어리누나. 一日愁隨一線長

1598년 무술년이 되었다. 그런데 강항 일가는 1월 5일에 조카딸 예원이 병으로 죽고, 9일에는 중형의 아들 가희가 죽었다. 강항 형제의 여섯 자녀 중 세 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고, 두 명은 왜국에서 죽어 작은 딸 하나만 남았다. 강항은 한유의 시를 떠 올렸다.

너에게 무슨 허물 있으랴.

모두가 내 죄여라.

난간에 기대어

백년을 울어도 못 풀 한이어라.

▲ 적중봉소

4월 27일은 돌아가신 어머니 기일(忌日)이었다. 강항 일가는 차마 그저 넘길 수가 없어서 가진 물건을 팔아서 제수를 장만하여 제사를 지냈다.

4월 그믐에, 서울 대밭 거리에서 살다가 임진년(1592년)에 잡혀 온 사람이 왜의 서울에 있다가 이예주(伊豫州)로 도망쳐 왔는데, 일본 말을 잘하였다. 강항이 그에게 도망가자는 뜻을 보이니 찬동하여 함께 탈출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5월 25일 밤을 틈타 강항은 서쪽으로 탈출하여 사흘을 가다가 몰래 바닷가 대밭 속에서 쉬고 있노라니, 60세 되어 보이는 왜승(倭僧)이 있었다. 강항은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간곡히 부탁을 했더니 왜승은 배로 건너 주겠다고 허락했다. 강항은 반가워 중을 따라 갔는데 열 걸음도 못되어서, 도도 다카도라의 병졸에게 잡히고 말았다. 왜병들은 강항을 다시 오즈성으로 끌고 가서 삼엄하게 감시했다.

한편, 강항은 이예주 남쪽 30리에 있는 금산(金山) 출석사(出石寺)의 승려 호인(好仁, 요시히토)과 자주 어울렸다. 호인은 비전주(肥前州)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벼슬을 하여 직위가 탄정(彈正)에 이르렀고, 우리나라 서울에 와 본 일이 있으며, 자못 문자(文字)를 해독하였다. 그는 은퇴하여 절 아래 전토(田土)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강항에게 부채에다 시(詩) 한 수를 청하므로 강항은 시를 써주었다.

해동이 여기든가 천리 밖 아득한 곳

바람 편에 보내는 소식 아는가 모르는가.

봉성의 옛터의 소식은 아득하고

꿈도 물결에 싸여 가도오도 못하네.

왜승 호인은 강항을 불쌍히 여겨 예우가 남보다 더했고, 강항에게 자기 나라 사적에 관한 문헌을 서슴지 않고 보여주었는데, 그 안에는 지리며 관제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강항은 이를 모두 베꼈다. 또 도도 다카도라의 아비 백운(白雲)이 매우 상세한 일본 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통역을 시켜 베껴 오도록 했다. 거기에다가 강항은 실제로 본 왜국 형세와 우리나라 국방대책을 서로 비교하여 <왜국팔도육십육주도>를 만들고 적중봉소 글을 썼다.

이리하여 강항은 ‘적중봉소(賊中封疏,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를 울산 사람 김석복 편에 보냈다.

김석복은 도원수 권율 집안의 종으로 계사년(1593년) 가을에 잡혀 와서 줄곧 이예주에 살고 있었다. 그는 많은 돈을 주고 왜선(倭船)을 빌려서 귀국을 도모한다 하여 강항은 봉소 글과 등사물 일체를 김석복에게 보냈다.1)

주1) 「적중봉소」는 모두 3벌인데, 무술년(1598년)에 이예주(伊豫州)에 있을 적에 김석복에게 보낸 것이 1벌, 기해년(1599년)에 복견성에 있을 적에 왕건공에게 보낸 것이 1벌, 다시 써서 신정남에게 보낸 것이 1벌이다. 그런데 신정남 것은 전달되지 못했고, 왕건공이 가지고 온 것만이 1599년에 선조에게 도달하였다.(선조실록 1599년 4월15일자에 원문이 실림), 김석복 것은 1601년 가을에야 체찰사 이덕형에게 바쳤는데, 이덕형이 “강(姜)이 이미 살아 돌아왔으니, 이 소는 올릴 필요가 없다.”해서 돌려보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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