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38) 전통 연(鳶) 공예가 김정옥 선생
남도의 멋을 찾아서(38) 전통 연(鳶) 공예가 김정옥 선생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7.12.0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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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놀이 전승 위해 남도연보존회 회장 활동
연날리기, 과학·공예·미 등 모든 요소 담은 종합예술

“에헤야 디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보자. 에헤야 디야 잘도 난다~ 저 하늘 높이 난다.”

유년 시절 쌩쌩 부는 겨울바람에 맞서며 연을 날렸던 추억이 누구나 한 번씩쯤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연날리기’동요가 신이 나게 울려 퍼지며, 마을 곳곳의 넓은 들판에선 아이들이 연 날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명절이 되면 아이들은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가져온 연들을 ‘누가 더 높이 날리나’ 경쟁하듯 하늘 높이 두둥실 띄우곤 했다.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연날리기는 드론, 태블릿pc, 컴퓨터의 보급화 등 놀이 환경 변화로 자주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됐다.

오늘날 연 대신 드론을 날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잊혀가는 민속놀이의 맥이 아쉽기만 하다. 민속 연(鳶) 공예가 홍포 김정옥(67) 선생은 35년여 세월동안 수많은 연을 만들고, 연을 날려 왔다.

민족의 얼 담은 전통놀이 ‘연날리기’

옛 조상들은 연을 통해 많은 것들을 표현해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뿐만 아닌 연(鳶)으로 전투지시를 내렸다.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신호를 나타내는 다양한 모양의 통신연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명령을 전달하기도 했다.

우리 전통의 연은 유일하게 가운데 구멍이 나있다. 연을 날릴 때 쓰는 얼레도 유일하다. 흔히 동그란 구멍이 뚫린 연을 ‘방패연’이라고 불렀고, 그 구멍은 조상들의 얼이 지나가는 ‘혼 구멍’이라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소망을 담아 연을 하늘 높이 날리기도, 연줄을 끊어 액운을 띄워 보내기도 했다. 집집마다 연을 만드는 게 최고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우리 전통의 얼을 끊으려 연을 날리면 감옥에 가두고 벌금을 물게 하는 등 전통 연을 마음껏 날리지 못하게 했다.

광복이후에는 민족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1956년 서울에서 개최한 제1회 전국연날리기 대회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관전을 하러 올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김정옥 선생은 유년 시절 국악인이었던 아버지의 두루마기 끝자락을 붙잡고, 연날리기 대회에 가서 대통령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김 선생은 “그 이후 아버지에게 직접 연과 얼레를 만드는 방법을 직접 배우고, 어떻게 날려야 하는지를 배우고 공부했다”며 “연에 글을 써서 날리기도 하는데 청호 김승남, 송파 이규형 선생에게 글과 한문을 배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아버지는 늘 ‘인생은 짧지만 문화예술의 길을 길게 갈 것이다’고 문화의 꽃을 피우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고 덧붙였다.

방패연의 원리, 세계에서도 수준급

그는 커가면서 금형기술을 배워 생활을 위해 본업으로 이어갔지만, 아름다운 전통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끈은 절대 놓지 않았다. 연을 만들고 연을 날리는 일에 누구보다 더욱 애착을 갖고, 계속해왔다.

4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연을 만지다 보니 그의 연날리기 실력은 보면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연을 날리는 솜씨에 따라 연을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하기도 하고, 좌우로 우회하거나 급하강, 급상승 등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는 연날리기 대부분의 기술을 연마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얼레는 마치 리모컨처럼 연을 상하, 좌우로, 또 입으로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사실 연날리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인들이 하는 세시민속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정성과 과학성을 따져볼 때 우리나라 ‘방패연’에 견줄만한 것도 없다.

그는 “국제연날리기 대회가 있다. 외국인 선수가 그 나라 연을 날리듯이 우리 방패연을 날릴 줄 아는 우리나라 대표 선수를 키워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 정녕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고, 전통이 잊어져 가고 있다. 국제무대에 서보면 우리 것이 최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연’의 원리 활용한 우리나라 최초 비행기

남도연보존회 회장인 홍포 김 선생은 연이 자연스럽게 바람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원리로 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에 발명되어 임진왜란 때 사용된 최초의 비행기 ‘비거’ 역시 ‘연의 원리’를 활용해 만든 기술이라고 한다. 사람이 탈 수 있었으며 새처럼 날아다니면서 전투에서 공중전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비거는 실제로 인류 최초의 비행기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보다 훨씬 앞선 세계 최초의 비행기라고 볼 수 있다”며 “각종 실록에서 비거를 기록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기 때문에 고증으로 내려온 것이다”고 설명했다.

보통 방패연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반 가량 걸린다고 한다. 빛고을공예창작촌에 가면 김정옥 선생에게 연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편백나무로 얼레를 만들고, 대살을 다듬어 창호지에 고정시켜 방패연을 완성시킬 수 있다.

그는 연을 날리는 것은 ‘표출’이라고 말한다. 김 선생은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문양, 무늬라든지 소리로 표현하곤 했다”며 “연 역시 마음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기쁨과 슬픔을 하늘 높이 날리는 것이다. 연에 마음을 담아 괴로운 것을 써서 날리기도 한다. 연을 날릴 때만큼은 내 마음도 정화가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바람을 여기는 자세도 특별하다. 그는 바람을 ‘바람님’이라고 부른다. 바람신에게 마음을 빌어 멀리 날려 보낸다.

수많은 각종 연날리기 대회에 출전하고, 연 만들기를 계승해온 그는 지난 2009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상을 맞아 하얀 가오리연 400개를 이은 ‘상주연’을 국회의사당 하늘에 띄워 명복을 빌기도 했다.

김정옥 선생은 잊혀가는 세시풍속놀이의 전승을 위해 오늘도 자리에 앉아 얼레를 만들고, 창호지를 매만지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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