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거리'를 부숴라!
'돌의 거리'를 부숴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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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제방>

지난 일요일, '바캉스'라는 말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텅 빈 도시의 거리를 둘러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의 진정한 주인은 대체 누구인가…. 도청 이전을 결사 주장하는 플래카드 건너편엔 시도 통합 결사 반대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그 틈새엔 온 도시를 시커멓게 도배질하다시피 하는 나이트클럽 개점박두 고지문이 눈을 어지럽힌다.

메마른 도시를 주름잡는 갖가지 풍경들이 기실 거주자의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이 펼쳐지고, 이는 마치 '핍 쇼'의 구경거리와도 같이 도시의 주인을 손님으로 내몰고 있는 듯하다. 언필칭 '주민자치'라는 말은 들어본듯 한데, 누가? 누구를 위한! 주민자치란 것인지 알쏭달쏭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면 그렇다.
지난 7월초 광주전남발전연구원이라는 곳에서는 도청 이전에 대비한 광주발전 방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도심 환경 디자인 필요성 등 몇가지 타당한 주장도 있었지만,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5 18기념공원(또 기념공원?)이 조성될 도청 부지에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 '골든벨 탑'을 세우는 것이라든지, 금남로를 조각의 거리로 꾸미자는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연구기관이 그간 해온 역할도 그렇지만 일부 제안이 갖는 비문화적 성격 때문에 이를 모른 척 넘기기 어려운 점이 있다.

광주전남발전연구원 제안 비문화적

'골든벨 탑'이라니…. 신화처럼 기억되는 먼 고대의 바벨탑이나 중세 고딕양식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근세의 미술사 혹은 건축사를 돌아볼 때, 수평 지향의 인간 시각을 가로지르는 수직의 위력적 미학이 결과한 부정적인 결과들을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이미 우리는 5 18 신묘역에 위풍당당 들어서서 추모를 근엄하게 '요구'하는 탑의 위세에 한없이 주눅든 경험이 있다. 그 뿐인가. 천혜의 시각적 휴식포인트라 할 무등산을 곳곳에서 가로막는 특색없는 건축물들이 시립하고 있는 도시 풍광은 살만한 도시가 갖춰야 할 필요한 조건을 넘어서 버렸다.

금남로만 해도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이 거리는 그저 단순한 거리가 아니라, 역사 속에 각인되어 '광주'라는 정서적 현실적 지점과 동일시되어 있다. 파리에 샹제리제 대로가 있고, 베를린에 '보리수 아래'(Unter den Linden) 거리가 있다면, 광주엔 금남로가 있다.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숱한 그림과 노래와 시와 소설로 남은 금남로는 동시대인의 가슴에 휴화산처럼 영원히 간직될 삶의 리얼리티 그 자체가 아니던가?

파리 샹제리제, 베를린 '보리수 아래'(Unter den Linden) 거리, 광주엔 금남로가 있다.

소위 '1%법'이라는 기형적인 도시미관장려법 때문에 이미 이 거리에도 갖가지 자태를 뽐내는 수십여점의 조각상들이 들어서 있다. 사람에 따라 보기 나름이겠지만, 그 조각상들이 갖는 다양한 예술적 형태미가 회색빛 도시의 건조한 질서를 제압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해 11월 동구청은 이 거리를 '조각 예술의 거리'로 조성하겠다고 밝히고 나섰고, '금남로에 돌조각을 심어보자'는 캠페인에 참여할 작가까지 최근에 선정했다. 동구청의 계획대로라면, 올 9월 금남로를 '한바꾸' 돌면 광주지역의 내노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조리 감상할 기회가 주어지니 이 또한 예향에 사는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릴 복임에 틀림없다.

금남로를 돌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의 무모함은 미리 짜여진 예산에 맞춰 주문한 돌과 청동 조각들을 마치 경복궁 근정전의 품석처럼 거리에 도열시키겠다는 발상에 있다. 또한 시민의 자긍이라 할 금남로를 치장함에 있어 시민의 이해나 동의를 구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사실 시각적으로 별 특색없는 금남로에 미적 장치를 더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오도시키면서까지 '꽃단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술작품이 단지 공공장소에 놓여 있다고 해서 그게 공공미술이 될 수는 없으며, 공공성을 획득한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작품이 놓여지는 장소의 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행정편의적 기획이야말로 또 하나의 짜증스런 공해에 다름이 아니다.

왜 이 도시의 식자들, 특히 예술가들은 이 얼토당토 않는 자치단체의 '문화횡포'에 침묵하고 있는가? 이런 그릇된 자치행정에 대한 정당한 '님비', 다시 말해 "이 거리만은 절대 안돼! 돌의 거리를 부숴라!"는 주장쯤은 마땅히 제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평화로운 노래소리>, <공간 속의 여인>, <봄이 오는 소리> 등의 탐미적 내용을 한껏 담은 돌조각들로 치장될 예술과잉의 금남로를 생각하며 지금 우리에게 유의미한 삶의 형식 혹은 내용은 무엇인가라는 새삼스런 질문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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