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강항(3)
길 위의 호남 선비,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강항(3)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11.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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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내산서원으로 들어가서 먼저 간 곳은 ‘전시관’이다. 여기에는 강항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논잠포 섭란 사적비’, ‘포로가 된 강항 선생’, ‘오즈에서의 억류생활’ 등이 전시되어 있고, 강항이 일본에서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주자학을 가르친 자료도 있으며, 일본어로 된 강항 관련 책도 있다. 또한 2001년 3월에 문화관광부가 강항을 ‘이 달의 문화인물’로 지정했다는 사진도 있다.

그러면 강항이 영광 논잠포에서 왜군에게 잡혀서 일본 시코쿠(四國) 에이메현 오즈성으로 끌려간 여정을 살펴보자.

1597년 9월 23일 아침에 강항 일행은 부친을 찾아 논잠포(論岑浦)로 향했다. 그런데 바다 안개가 자욱한 속에 배 한 척이 나타났다. 강항 일가는 사로잡힐 것을 우려하여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바닷물이 너무 얕아서 왜군의 갈고리에 구출되었다. 왜군은 강항 일행을 일제히 포박하여 뱃전에 세워 놓았다.

이 때 왜군들은 강항의 두 아이를 바다에 내던졌다.

어린 아이 용(龍)과 첩의 딸 애생(愛生)의 죽음이 너무나 애달프다. 모래사장에 밀려 물결 따라 까막까막하다가 그대로 바다 깊숙이 떠내려가고 말았다. ‘엄마야, 엄마야’하고 부르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나이 30세에 비로소 얻은 아이다. 이 아이를 가졌을 때다. 어린 용이 물 위에 뜬 꿈을 꾸었다. 그래서 이름을 용이라 지었는데, 이 아이가 물에 빠져 죽으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24일에 강항은 무안현 낙머리(落頭)에 도착하였다. 왜선 수천 척이 온 바다에 그득하였고, 서로 뒤섞인 남녀의 어지러이 쌓인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마치 지옥 같았다.

며칠 후에 배는 영산창(榮山倉)ㆍ우수영을 지나서 순천 왜교(倭橋)에 당도했다. 순천 왜교성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주둔한 곳인데 포로를 실은 배 100여척이 바다에 있었다.

강항은 잡혀 온 날을 세어보니 9일째였다. 9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도 그래도 살아 있으니 목숨이 모질기는 모진 모양이다.

이 날 왜녀(倭女)가 밥 한 사발씩을 주었다. 쌀은 뉘도 제대로 벗기지 아니했고 모래가 반을 차지했고, 생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워낙 배가 하도 고파 그나마 요기를 했다.

며칠 뒤 강항은 경상도 안골포(安骨浦)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안골포를 출발하여 밤새 갔다. 닭소리가 들리고 첫새벽 안개 속에 대륙이 가로 뻗어 있는 것이 보였는데, 대마도였다.

비바람 때문에 대마도에서 이틀을 묵고 다음날 큰 바다를 건너 육지에 당도했는데 일기도(壹岐島)였다.

다음날 또 한 바다를 건너니 시모노세키(下關)였다. 이튿날에 또 하나의 바다를 건너 당도했는데 카미노세키(上關)였다. 산수가 깨끗하고 물이 맑아 그림 같은 풍경이었고 감귤이 아름답게 빛났는데, 도깨비 소굴로서는 아까운 정취였다.

이튿날 또 바다 하나를 건너 닿은 곳이 이예주(伊豫州)의 장기(長崎)다.1) 여기서 비로소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갔는데, 굶주림과 피곤함이 너무 심하여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넘어졌다.

여섯 살 난 작은 딸이 제 힘으로 걷지 못하여 아내와 처모(妻母)가 번갈아 업었다. 그런데 업고서 개울 하나를 건너다가 거꾸러지자 일어나지 못했다. 언덕 위에 있던 한 왜인이 눈물을 흘리며 붙잡아 일으키고 말하기를, “아! 너무 심하다. 대합(大閤 : 풍신수길을 말한다)은 이들을 잡아다가 어디다 쓰려는가? 하늘도 무심하지!”하고, 급히 자기 집으로 달려가서 조밥에 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 집 식구를 먹였다.

왜노 가운데도 이런 착한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흉측한 짓을 하는 것은 법령을 만들어 그렇게 만든 것이다.

10리쯤 가니 대진성(大津城)이었다. 이곳은 도도 다카토라(佐渡 1556∼1630)의 성이었는데 강항을 잡아온 이는 다카토라의 부하 노부시치로(信七郞)였다. 왜노들은 우리 형제들을 갈라놓지 않고 한 집에서 지내게 하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2)

▲ 논잠포 섭란 사적비

1) 『간양록』 원본의 장기(長崎 나가사키)는 장빈(長浜 나가하마)의 오기(誤記)이다. 나가사키는 규슈에 있다. 강항은 나가하마 해변에 내려서 오즈성까지 걸어갔다.

2) 강항의 포로 여정은 『간양록』의 ‘난리를 겪은 사적[涉亂事迹]’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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