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중간, 끝
시작, 중간, 끝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7.11.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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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서사물(이야기)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이야기를 꾸미는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시작할까하고 고심하게 된다. 그래서 ‘시작은 반’이라는 말이 있고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요점을 먼저 말한다면 ‘시작은 무한한 개연성에서 출발하여 끝에 가서는 수많은 사건의 개연성이 필연성으로 끝나야 한다. 이것이 서사물의 플롯을 짜는 일반 법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전소설이나 대중소설을 보면 이러한 일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많다. 그렇다고 개연성과 필연성의 기준으로 서사물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처음 시작은 훌륭했지만 끝이 흐지부지한 이야기를 많이 보아 왔다.

이런 것을 일컬어 용두사미식 서사 진행이라 한다. 서사는 인간 삶을 반영한 것이기에 실재로 우리의 삶도 용두사미 또는 잘 나가던 사람이 변절하는 예도 허다하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처음과 끝이 다 좋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 3.1운동 33인 대표 중에 일제에 부역한 인사가 여럿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젊은 날에는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던 사람 중에 나중에 변절하여 독재자의 하수인이나 앞잡이가 된 인사도 다수 발견하곤 한다. 무엇이 그들을 변절자로 만들었을까. 한 마디로 욕심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면 뻔히 볼 수 있는 것을 그 욕심 때문에 훼절한 사람들을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다시 서사 이론으로 돌아가서 우리 중·고등학교 때 소설(주로 단편소설)을 배울 때 발단, 전개, 갈등, 절정, 대단원으로 나누어 세분하는데 첫번째 문제 ‘발단이 무엇이냐’하는 것부터 엉터리로 배웠던 것이다. 그 엉터리가 엉터리를 낳고 낳아 지금(21세기)까지도 엉터리로 가르친다. ‘발단은 작품의 맨 처음부터 어디까지’라고 하는데 모든 참고서에 정설인양 소개되고 있다.

그러면 올바른 발단(exposition)은 무엇인가? 좀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주된 파블라(스토리)가 시작되는 곳이 발단인 것이다. 가령 최서해의 「홍염」을 예로 든다면 작품 서두의 배경 묘사는 발단이 아니라 문서방이 중국인 인가를 만나는데가 이 작품의 발단인 것이다. 만약 이글을 읽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들은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이럴 때 “오매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순 엉터리로 가르쳤어야”라고 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앞으로는 절대 ‘발단’에 관한 한 엉터리로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남을 가르치려면 좋은 글을 널리 찾아 읽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쯤은 적어도 국어 교사라면 읽어야 한다.

나는 작년에 이 칼럼에서 ‘아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는 표제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는 「시학」의 핵심은 비극론이라는 것을 썼는데 다시 읽어 보니 정확하게 그 책의 요체를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서사 이론에서 ‘시작, 중간, 끝’은 시간 이론의 범주에서 다룰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세 요소 중에 제일 먼저 거론된 것은 ‘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1993, 문학과 지성사) 프랭크 커모드의 「The Sense of Ending (1966)」이 이 논의의 시초가 되고, 다음으로 우리에게 「오리엔탈리즘」으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의 「시작 The Begining(1978)」이 ‘시작’을 본격적으로 논구한 책이다.

그리고 1984년 J. 힐리스 밀러가 「장르(Genre)」 라는 학술 계간지에 쓴 ‘중간(Middle)’이라는 논문에서 서사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토막’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더 이상의 논의가 없는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이 그 분량에 비해 떨어지는 모양이다.

서사물에서나 인간사에서 끝이 매우 중요하다. 끝을 망치면 더 이상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잘 끝맺음해놓고도 못 미더워서 쓸데없는 말을 덧붙여 작품을 망쳐놓는 경우가 있다. 옛 사람은 이것을 사족이라 해서 경계했다. 인간사에서 말년에 훼절한다면 그것을 단순히 망녕들었다고만 할 것인가. 단순한 것 같지만 ‘시작, 중간, 끝’은 이처럼 신중하게 되새겨야만 할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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