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1) 영화목단(寧畵牧丹)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1) 영화목단(寧畵牧丹)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11.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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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연지로나마 모란을 예쁘게 그려 볼 것을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 작품을 울컥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사랑했다면 모란이 뚝뚝 떨어진 날을 아직도 기다리겠다고 했을까. 분명 모란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다. 사로잡기보다는 가까이 하기엔 오히려 먼 당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눈 속의 매화가 세인들의 눈에 차마 들어오지 않을 줄을 알았다면 매화를 그리지 않고 붓도 없고, 물감 없이 연지로나마 차라리 모란을 그리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寧畵牧丹(영화목단) / 점필재 김종직

눈 속에 피는 매화 비온 뒤 산 빛깔

보기에 쉽겠지만 그리기에 어려워라

세인들 눈 밖에 나면 연지곤지 그리리.

雪裏寒梅雨後山     看時容易畫時難

설리한매우후산     간시용역화시난

早知不入時人眼     寧把臙脂寫牧丹

조지불입시인안     녕파연지사목단

 

차라리 연지로나 모란을 예쁘게 그려 볼 것을(寧畵牧丹)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눈 속에 핀 매화, 비 온 뒤의 촉촉한 산은 / 보기에는 쉽지만은 그리기에는 어려워라 // 진작 세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었다면 / 차라리 연지로나마 모란을 예쁘게 그려볼 것을]이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차라리 모란을 그릴 것을]로 번역된다. 시인이 16세 때에 과거에 낙방하고 귀향하면서 한강의 제천정(濟川亭) 벽에 붙여 놓았다고 알려진 시다. 세상에 대한 열정도 크지만, 그에 비례하여 실망감도 컸겠다. 그래서 다소 가볍게 치기도 한단다. 인생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정습명의 시는 슬퍼하되 지나치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로 격조가 높이 흐른다고 말한다.

시인은 모란에 대한 소신과 모란을 바라보는 자기 철학이 있었음을 짐작한다. 눈 속에 핀 매화와 비온 뒤의 산을 보면서, 이것들은 보기에는 쉽지만 그리기에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작 많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나 않았었다면, 차라리 여자들이 화장할 때에 입술에 바르는 연지로 그리기 쉬운 모란을 그려보았을 것이라 하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본다.

화자의 은근과 끈기에 또 놀라게 된다. 차라리 연지로나마 모란을 그리기는 더욱 쉽겠지만, 매화와 산을 그리기엔 어렵다고 했고, 그것이 세인들의 눈엔 들어오지나 않았다면 하고서 후회한다. 이는 본인이 시험에 낙방하고 시관들이 자기 작품을 알아주지 않았다는 비유법으로 읽힌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눈 속 매화 비온 뒤 산 그리기는 어려워라, 세인들 눈 들지 않으면 연지로나 모란 그릴 걸’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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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483년 우부승지에 올랐으며 이어서 좌부승지, 이조참판, 예문관제학, 병조참판, 홍문관제학, 공조참판 등을 두루 역임한 조선초기 문신이다. 문장과 경술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로 불리기도 했다.

【한자와 어구】

雪裏: 눈 속. 寒梅: 찬 매화. 추위에 핀 매화. 雨後山: 비가 온 뒤의 산. 看時: 때때로 보다. 容易: 용이하다. 畫時難: 그리기엔 어렵다, 쉽지 않다. // 早知: 진작 알다, 일찍 알다. 不入: 들어오지 않다. 時人眼: 세인의 눈. 寧: 차라리. 把: 잡다, 갖다. 臙脂: 연지. 寫: 그리다, 복사하다. 牧丹: 모란. 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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