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36) 한땀 한땀 수놓는 강담희 달인
남도의 멋을 찾아서(36) 한땀 한땀 수놓는 강담희 달인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7.11.2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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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실, 손끝에서 이어지는 호남의병정신
20여 년간 자수와 인연으로 달인의 경지에

예로부터 자수는 신분계급을 알아볼 수 있도록 의복에 다양한 모양으로 표현됐다. 외부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 여성들은 규방에서 덕을 닦는 교양으로 자수를 놓기도 했다.

직접 손으로 수를 놓는 일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작은 바늘에 얇은 실을 이어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보통 차분함과 침착함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라면 절대 못할 일이다. 한 가지 분야로 수십 년 동안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더욱 보통일이 아닐 터이다.

강담희(67) 씨는 섬세한 솜씨로 한땀 한땀 정성 들여 의병정신을 자수로 그려낸다. 전국에서 의병을 자수로 표현하는 이가 과연 또 있을까. 그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의 유팽로, 고경명 의병장부터 호남의병정신을 이어간 광주학생독립운동, 4.19,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그 당시를 상징하는 모습을 자수로 표현하는데 달인이다.

▲호남의병을 주제로 최초 자수 작품을 만들고 있는 강담희 달인

‘풀내음’처럼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 담아

강담희 씨는 오래전 의병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가짐으로 바늘을 한번 잡으면 등이 굽을 정도로 밤낮을 새가면서 작품을 완성시킨다. 그녀는 한땀이 되는 실의 길이를 손이 기억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사용되는 실의 양을 뽑아낸다.

기자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 강담희 씨를 자택에서 만나 비로소 그녀의 작품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작업실이자 작품을 보관하고 있는 자택의 현관문을 들어서자 ‘풀내음 작업실’이라는 작은 푯말이 눈의 띄었다.

‘풀내음’처럼 꾸밈없이 순수하게 작품 활동을 한다는 속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섬세하고, 깔끔한 성격의 그녀의 집 곳곳에는 보통 솜씨가 아닌 듯한 작품들이 정돈되어 걸려 있다.

강담희 씨는 수줍은 소녀의 미소를 띠며 작품이 보관된 방으로 안내했다. 자택의 한 방이 통째로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었다. 완성된 작품들은 한 종류의 액자와 크기로 통일해 가지런히 줄지어 벽면 한쪽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깔끔한 성격은 진열된 작품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쪽 방에는 오래전부터 그녀가 아끼는 십자수 작품들도 한 가득이었다. 그가 자수를 처음 잡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이라고 한다. 손재주가 뛰어난 그녀가 취미로만 해왔던 자수와 십자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IMF때라고 떠올린다.

앉은자리에 하루 꼬박 새워 직접 도안

강담희 달인은 “어린 시절부터 수놓는 것을 좋아했는데 IMF를 겪으면서 어려움 속에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십자수에 몰두하게 되었다”며 “일이 끝난 이후 수를 놓는 시간만큼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으로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되고, 오로지 자수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초창기에는 순수한 자연과 때 묻지 않은 동심을 표현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20여 년간 오직 한길로 자수를 해오던 도중 호남의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2~3년 전부터 호남의병을 주제로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강 달인은 호남의병을 자수로 놓기 위해 하루 꼬박 도안을 직접 그려 완성하고, 본격적인 자수 작업에 들어간다. 그녀가 처음으로 잡은 의병 자수 작품은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인 유팽로 의병장의 모습이었다.

전남 곡성 출신 유팽로 선생은 1592년 4월 20일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키고, 양대박과 고경명을 찾아가 호남 연합의병을 결성한 인물이다. 우리가 임진왜란 최초 의병이라고 달리 알고 있는 곽재우 의병장보다 이틀 먼저 의병을 모아 궐기했다.

이후 호남의병들이 정진을 위해 창의했던 모습을 담은 장면과 말을 타고 호기롭게 의병활동을 했던 제봉 고경명 의병장의 모습을 한땀 한땀 자수로 표현해냈다.

강담희 달인은 “의병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천, 홍성 등을 다니고, 경북 의령에 가서 ‘의병의날 행사’를 보고난 이후 감동을 받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의병장들의 가족이 된 심정으로 수를 놓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자수로 만든 충렬공 제봉 고경명 선생 공적비

자수로 호남 의병정신 표현은 ‘최초’

의병정신을 자수로 표현한 작품들은 나아가 근·현대 역사에까지 이르러 광주학생독립운동과 60년 4.19혁명, 80년 5.18민주화운동까지 이어졌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이승만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졌다. 전남 남원이 집이었던 김주열 열사는 마산상고 합격을 확인하러 마산으로 갔다가 시위에 참여하면서 실종됐다.

끝내 김주열 열사는 27일이 지난 후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주검이 되어 바다위로 떠올랐다. 당시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남원에서 마산까지 찾아가 한 달 내내 아들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강담희 달인은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기 위해 마산 전체를 돌아다녔던 어머니의 마음을 대신해 김주열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을 자수로 그려냈다.

최근에는 강 씨가 집중해서 만들고 있는 자수 작품들은 80년 5.18민주화운동의 상징물들이다. 그녀의 나이 30살에 80년 5.18을 경험했다. 강 달인은 “5.18을 경험한 세대로 5.18을 생각하며 도안을 그리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면서도 감동을 받았고, 5.18을 상징하는 것들을 자수로 표현해 현재 3개의 도안을 그려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호남의병 정신을 담은 자수 작품들을 모아 오는 1월 전라도 천년 기념에 맞춰 의미 있는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호남의병을 주제로 한 자수 작품 전시는 국내 최초로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강담희 달인의 끝없는 자수에 대한 사랑은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실처럼 영원토록 이어가 호남 의병정신을 대신하고 있었다.

▲자수로 만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자수로 만든 5.18민중항쟁추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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