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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누정(7) 석관정(石串亭)나주의 제 일정(第一亭)이요, 영산강 제 일경(第一景)이라
나천수 (사)호남지방문헌연구소 전문위원  |  siminsor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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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9  1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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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관정
   
▲ 석관정 현판

석관정은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844번지에 있으며 함평이씨 석관 이진충(石串 李盡忠)이 1522년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신영현감(新寧縣監)을 역임하다가 퇴임하고 낙향하여 1530년 경에 세운 누정이다. 영산강 본류와 고막강 지류가 만나는 절벽위에 세워졌으니 가히 영산강 제1일이라 할 만큼 절경이다.

   
▲ 영산강 제일경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들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 후손들이 몇 차례 보수를 하다가 1755년에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 공조참판 이시창(參判 李時昌, 1691~1780)이 중건하였다고 하나 중건기는 발견되지 않고 석관정을 읊는 7언율시 시 한 수가 전한다.

이시창의 족보를 보면, 호가 수면당(水面堂)인데 훗날 석관(石串)을 호로 사용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훗날 이시창의 시를 원운 시로 삼아 차운 시를 지어 시판으로 제작하여 누정에 게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의 운이 주(洲), 유(遊), 유(流), 추(秋), 주(舟)이다. 1755년에 지었다는 이시창의 원운 시를 소개 한다.

   
▲ 이시창의 원운시

두어 간의 띠 집을 물가에 우뚝 세운 것은                          數間茅屋起江洲

다만 선대의 업(業) 잇기 위함이지 놀기 위함 아니네.           只爲承先不爲遊

뒤로 마주한 청산(靑山) 북쪽으로 솟아있고                        後對靑山連北屹

앞으로 내려다보는 금수(錦水) 서쪽으로 흘러가네.               前臨錦水向西流

뜰 앞의 하얀 달빛 천년의 빛인데                                     庭前月白千年色

난간 밖의 맑은 바람 만고의 가을이네.                              檻外風淸萬古秋

세상맛 복잡다단한데 어찌 탄식할 것 있으랴만                    世味多端何足歎

바쁜 중에 틈 내어 작은 배 노 저으며 절로 기뻐하네.            偸閒自喜棹扁舟

누정의 기문인 〈석관정기(石串亭記)〉는 1759년 진사 탐진 최화(進士 耽津 崔俰, 1685-?, 1721년 생원시)가 지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최화의 석관정기

영산강은 사행천(蛇行川)으로 구불구불 급회전을 하는데, 석관정이 있는 누정 아래는 영산강이 상류에서 흐르는 급류의 물결이 직접 치닫는 곳이다. 이곳에 바위가 층층으로 쌓여 막고 있어서, 흙이 유실되지 않았기에 오랜 세월 석관정이 강변에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석관(石串)이라 하였는데, 그 말뜻은 ‘돌을 꿰어간다’라는 뜻인데, 최화(崔俰)는 “그 형상이 소가 누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엎드린 거북이가 앞뒤로 줄 지어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바위들을 꿰미에 꿰어놓은 모양이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누정의 명칭이 석관정()이라 불리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다행하게도 후손 가운데 참판(參判)인 이시창(李時昌)이 뜻이 있어 두어간 초가집을 지었으니 모습이 옛날의 모습과 같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건물이나, 이시창이 중건한 누정은 초정(草亭)의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슬 같은 과일이 산에 가득하니 진(秦)나라 동자(童者)가 불사약을 캐러 올까 두렵고, 은빛 나는 고기가 물에 비치는 산 그림자에서 뛰어노니, 노어(鱸魚, 농어)를 생각한 장한(張翰)을 부러워 할 것 없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석관정은 배산임수형(背山臨水形)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누정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영산강 강변에 위치한 모든 누정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누정아래 영산강에서 철따라 농어든, 숭어든, 장어든 소위 술 안주를 잡아 올릴 수 있어 시주회(詩酒會)의 최적지는 강변 누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몽탄강의 식영정(息營亭)에서부터 회진의 기오정(寄傲亭)에 이르기까지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채증된 구술정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은 목포 하구언이 바닷물이 밀물로 올라오는 것을 막아 버렸기에 영산강 어팔진미(魚八珍味)와 강변 포전(浦田)에서 생산되는 소팔진미(蔬八珍味)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다. 더더욱 강물은 5급수로 전락하고 녹조(綠藻)가 끼어 수많은 강변 누정이 옛 정취를 한꺼번에 잃어 버렸으니, 강변 누정이 ‘문화로 일구는 향부(鄕富)의 자원’임에도 묵힐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1906년에 10세손 춘헌(春憲, 1850~1906)이 재 중건을 하고 방후손 탁헌(鐸憲, 1842~1914, 호 南坡)이 쓴 기문의 내용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금성산 아래 영산강가 몇 십리 안의 좌우에는 산봉우리와 수석이 정겹고 수려하며 여기 저기 유명한 누정이 세워져 있다. 아마 옛날 명현과 진사들이 건립한 것으로, 은둔과 휴식을 하려는 뜻이 있었다. 또 학문을 강론하기도 하고 관직에서 물러나와 휴양하기도 하였다. 비록 누정의 면모가 훌륭함은 차이가 있고 취향은 같지 않지만, 그 고상함은 한결 같으니 석관정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령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은 운수와 인연이 있다고 할 것이니, 석관산(石串山)의 다행함은 현감공[이진충]의 만남이요, 현감공의 다행함은 석관산을 차지함으로 그 명성이 없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칭송이 자자함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중략) “이 누정이 다른 누정과 달리 들판에 있으면서도 깊숙하고, 밝게 나타나면서도 높았으니 올라가서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면 특별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보면 영산강변의 넓은 들판에 누정이 자리한 석관의 산은 비록 작지만 홀로 우뚝 솟아있어 강변과 강 건너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강 건너 마주보는 곳에는 광산(光山) 김씨인 봉곡(蓬谷) 김시중(金時中)의 아들 김상수(金相洙)가 부친의 노년 휴식을 위하여 지었다고 전하는 금강정(金岡亭)과 주몽세트장이 있는 나주 영상테마파크가 있다.

석관정 내부에는 최광언(崔光彦, 1759~?), 장헌주(張憲周, 1777~1867), 기계상(奇繼商, 1710~?), 이탁헌(李鐸憲), 이계우(李啓雨), 이광헌(李光憲), 이재근(李載根), 문창규(文昌圭), 이영범(李英範), 이광남(李光男), 이목헌(李穆憲) 등의 시문을 새긴 편액이 걸려 있다.

마지막으로 장헌주가 지은 시 한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로 이 작품은 그의 문집인《여력재집(餘力齋集)》에도 수록되어 있다.

   
▲ 장헌주의 차운시

바위 낭떠러지 모래밭에 뻗어 가파르게 우뚝 솟으니             巖崖阧峭入汀洲

그 옆으로 가설(架設)하기 어려우나 오르면 놀만 하네.         傍則難緣上可遊

큰 물고기와 자라가 있어 애써 큰 등으로 맞장구치고            應有鯤鰲勞巨背

소나 말이 중류에서 물 마시는지도 도리어 의심되네1).         却疑牛馬飮中流

용문도(龍門道)의 강 여울을 지주석(砥柱石)2) 이 끊는데      河湍砥截龍門道

적벽(赤壁)에 가을되자 썰물에 자갈밭이 생기네.                 潮落磯生赤壁秋

누정의 남은 터에 지금은 잡초만 흩어졌지만                      離榭遺墟今鞠艸

난정(蘭亭)과 재택(梓澤)3)을 통틀어 배에 감추겠네4).         蘭亭梓澤等藏舟

1) 큰물고기와…의심되네 : 이 싯구는 기암괴석의 모습을 비유한 듯하다.

2) 지주석(砥柱石) : 하남(河南) 삼문협(三門峽) 동북쪽 황하 중심에 있는 산 이름이다. 황하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흘러도 이 산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이 지점에 와서 갈라져 두 갈래로 산을 싸고 흐른다.

3) 재택(梓澤) : 재택은 석숭의 별관(別館) 이름이다. 《진서(晉書)》 권33 〈석숭열전(石崇列傳)〉에 “석숭이 정로장군(征虜將軍)이 되어 출정하게 되었다.……석숭의 별관이 하양(河陽)의 금곡(金谷)에 있었는데, 일명 재택이라고 하였다. 석숭을 전송하러 도성 사람들이 다 나왔는데, 여기에서 장막을 쳐 놓고 술을 마셨다”고 하였다.

4) 배를 감추겠네 : 원문 장주(藏舟)은 직역하면 ‘배를 감추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장헌주가 자신의 덕을 감추고 겸손하게 처세함을 가리킨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구렁에 배를 감추고, 못속에 산을 감추면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밤중에 힘센 자가 와서 짊어지고 가 버리면 바보는 알지 못할 것이다.〔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 負之而走 癡者不知也〕”라고 한 데서 나왔다.

한편, (주)시민의소리와 (사)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담양군과 화순군에 이어 나주의 주요 누정 인 쌍계정, 석관정, 장춘정, 기오정, 영모정, 금사정, 만호정, 벽류정 등에 걸린 모든 현판을 탈초 및 번역하여 현판완역집 간행과 홍보 영상물 제작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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