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닷가에서
가을 바닷가에서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11.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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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물러가고 가을 단풍이 한창인 이제 바다는 비로소 내 차지가 되었다. 바닷가에는 지난 여름의 잔해들이 널려 있다. 슬리퍼, 부서진 안경, 빈 맥주 깡통, 라면봉지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여름바다의 북적거렸던 흔적을 보여준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떠들썩거리며 태양에 몸을 그을리던 사람들은 어디로 다 가버리고 나 홀로 온전히 바다를 차지하기 위해 인적 없는 가을 바닷가에 섰다.

거대한 바다가 파도를 일으키며 웅장한 소리를 굴리면서 내게로 다가온다. 한 마장도 더 기다랗게 활처럼 휘어진 바닷가에 파도의 떼가 흰 거품을 물고 연이어 달려오는 모습은 몇 천만년 저 쪽에서 우주의 역사가 한꺼번에 안겨오는 듯한 느낌이다. 파도 하나하나에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알아듣지 못한다.

바다는 내 발밑에 밀려와서 파도를 부려놓으면 또 다른 파도가 잇대어 내 발밑에 밀려와서 흰 거품을 남기고 스러진다. 밀려오고 또 밀려오고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들을 나는 바라본다. 무엇이라고 형용할 바 없는 바다가 자아내는 저 우주의 숨소리.

누구는 말한다. 생명이란 파도와 같은 것이고 파도가 스러지면 바다로 돌아간다고. 파도가 바다의 표현이라면 생명도 바다같은 거대한 마음자리의 표현이라고. 그러므로 이 세상에 왔다 가는 생명은 결국 모두 그 한 마음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저으기 안도가 된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어진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고 파도는 끊임없이 바다로 돌아가고. 옛사람의 말투로 삶이란 하나의 파도가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하나의 파도가 스러짐이다. 가을 바닷가에 홀로 서서 그런 생각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 그 모든 생과 사의 드라마를 바다가 자아내는 저 파도들이 설명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 모든 파도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비유한다. 내가 가을 바닷가에 온 것은 바다를 보기 위해, 바다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파도를 보기 위해서다. 바닷가에서 느끼는 이 쓸쓸함, 이 고적함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만의 행복감이기도 하다.

가을 바닷가에는 먼 나라에서 흘러오는 세계의 소식들도 있다. 남국의 야자껍질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마음은 그것들이 온 곳으로 파도를 타고 간다. 멀리, 멀리. 이런 느낌이 영혼을 힐링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읽은 신문기사가 생각난다. 어촌의 외갓집에 온 도시 소년이 갯벌에 있는 전마선에서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바다 한 가운데에 배가 떠다니고 있었다. 잠든 새 밀물이 들어오고 전마선은 바다가 출렁대는 대로 흘러간 것. 며칠 간 그렇게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마침 지나가는 상선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는 이야기.

나는 그때 그 소년이 몹시도 부러웠다. 바다는 소년을 잔등에 태우고 바다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아, 모든 것은 표류에 그 답이 있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 내린 답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나중에 괴테를 읽을 때 ‘노력하는 자는 방황한다’와 겹쳐져 기억되었다. 나는 인생이란 것이 방황하는 데 답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사람들은 답을 찾아 헤맨다. 단 하나의 답을. 그리고 답이 없다고 한다. 헤맴 그 자체가 답인 줄을 모르고.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정리했던 것이다. 그것이 참인지는 나는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자신이 하나의 긴 이야기다.

마치 파도가 멀리서부터 차가운 바다와 추운 바다와 거친 바다와 솟구치는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지나서 바닷가에 와서 부서지듯이 사람도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고 나서 머리에 흰 거품을 얹고 세상을 떠난다. 방황이란 그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답일 것인가.

사실을 고백하자면 아주 먼 날에 나는 편지 한 통을 가슴에 품고 어느 섬을 찾아간 일이 있다. 그리고 전해줄 사람이 뭍으로 간 바람에 편지를 꺼내어 한 장 두 장 푸른 바다에 읽어주고 파도에 띄워 보낸 일이 있다. 세계의 모든 바다는 서로 손을 잡고 있으므로 나의 편지가 세계의 모든 바다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다시 돌아와 그 섬에 당도할 때 그 사람이 읽기를 바라면서.

지금 내가 가을 바닷가에서 흰 물머리를 쳐들며 내게로 달려오는 파도를 헤아리는 것은 그때 그 편지를 다시 어느 파도를 통해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다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도 편지는 세계의 모든 바다를 헤매고 있다.

철썩, 철썩. 바다는 쉼 없이 파도를 일으켜 내게로 보낸다. 누가 날더러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이렇게 바닷가에서 파도를 헤아리며 남은 인생을 살라고 한다면 더없는 행복으로 여길 것이다. 우르르 몰려와서는 스러지는 파도들, 그 파도의 뒤에, 뒤에, 뒤에 또 다른 파도들이 연달아 밀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바닷가 전체에 퍼지는 웅장한 파도소리는 짧은 한 생을 살아가는 내게 영원을 깨우쳐 주는 것만 같고.

바다와 내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해종일 지내고 있노라니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것들,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조차도 다 용서가 된다. 그러므로 바다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라 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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