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양씨 삼세구정려 현판 봉안식·추모제향
제주양씨 삼세구정려 현판 봉안식·추모제향
  • 이훈규 시민기자
  • 승인 2017.11.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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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7주갑 추모제전 거행
▲ 양승구 제주양씨 한림종회장이 삼세(三世)구정려(九旌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유재란 칠주갑(七周甲) 420주년을 맞이해 임진·정유재란 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송천 양응정(松川 梁應鼎) 선생 일가의 삼세(三世)구정려(九旌閭)와 병자호란의 의병활동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25일 오전 9시 광산구 박호동 박산마을 양씨삼강문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제주양씨 일문삼강 삼세구정려 추모제향과 삼세구정려 현판 봉안식에 이어 송천 양응정 추모 국궁 시연회가 봉행됐다.

송천 선생과 삼세구정려 추모사업 추진위원회가 주최한 추모제전에는 제주양씨 후손들과 성균관 유림, 광복회원,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전국 유일의 사액(賜額) ‘삼강문(三綱門, 지방기념물 제11호)인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맹활약한 충민공 양산숙 의병장을 비롯한 충신과 효자, 절개를 지킨 열녀·절부 등 7명을 1635년 인조의 특명에 따라 모시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녀 3대에 걸쳐 7정려가 내려져 삼세칠정이라고 불린다.

420년 전 정유년 명량해전 다음날인 9월 17일 임진왜란에 창의해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산화한 충민공 양산숙 의병장의 가족들은 나주 삼향포 앞에서 의병가족과 호남인을 몰살하려고 혈안이 된 왜구들을 만나 일가족 모두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목숨을 부지한 충민공의 정부인 이씨는 포태한 동서인 처사공의 부인 고씨를 갈대밭에 숨기고 왜구를 산으로 유인해 부인 고씨를 구하고 자결했다.

그리고 현령 임환과 정혼한 양씨부인은 임씨 가족이 탄 배가 영암 용당에서 왜구에 붙잡히자 가족들이 타고 있는 배를 피신시켜 가족들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바다에 뛰어들어 순절했다.

양승구 제주양씨 한림종회장은 “송천 선생의 일가는 임진왜란에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 의병장을 포함 총 9명이 순절했다”며 “송천 선생 일가족 9명이 순절하면서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충렬공의 손녀이며 복수장의 딸인 고씨부인은 유복자로 거오제 양만용 선생을 낳으니 양만용 선생은 이괄난과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에 3번 의병을 일으켜 충렬의 가풍을 이어간 셈”이라고 말했다.

1635년 인조 13년에 9명을 포상하라는 왕명이 내려졌으나 진사공 양산룡의 부인 고흥유씨와 김두남의 처 제주양씨가 제외된 채 시간이 흐르면서 삼세칠정려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2명의 행적과 승정원일기를 발굴해 양씨삼강문에 2명을 추가 배향하고 일문삼강 삼세구정려의 현판을 새롭게 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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