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9) 희제(戱題)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9) 희제(戱題)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10.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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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부용꽃이 나보다 더 예쁘다 하네

여자의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사항은 예쁘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옷가게를 지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곁에 있는 여인이 우아하고 예쁘다고 하면 “그럼 나는?”하고 시샘하는 반사적인 응대를 보낸다. 나무랄 수 없는 여심(女心)이리라.

시인은 부용(芙蓉)이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에 시샘하며 경쟁의식을 갖는다. 다음 날 아침 제방 둑을 걸었더니 부용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戱題(희제) / 운초 김부용

부용이 피어올라 연못 가득 붉어지니

사람들 부용꽃이 나보다 예쁘다네,

아침에 제방 걸으니 부용꽃을 보지 않네.

芙蓉花發滿池紅      人道芙蓉勝妾容

부용화발만지홍      인도부용승첩용

朝日妾從堤上過      如何人不看芙蓉

조일첩종제상과      여하인불간부용

 

사람들은 부용꽃이 나보다 더 예쁘다 하네(戱題)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1805~1854, 추정)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부용이 곱게 피어 연못 가득히 붉었으니 / 사람들은 부용꽃이 나보다 더 예쁘다고 말들을 하네 // 아침 일찍 제방을 따라 사뿐하게 걸어갔더니 / 사람들은 부용꽃을 보지도 않고 나만 자꾸 보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재미로 붙여 본 시제]로 번역된다. 운초는 문학적인 자부심이 대단하여 자신은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했다. 발랄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써서 남자를 무색하게 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작품집인 『운초집』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시는 규수문학의 정수로 꼽히고 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후 쓴 그녀의 시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시인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연꽃을 두고 시샘하고 있다. 부용이 연못 가득 붉게 피었는데 사람들이 부용이 예쁘다고 말한다. 다음날 아침 제방 따라 걸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부용은 보지도 않고 자기만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분명 내가 부용보다 더 예쁘지!’라고 말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는 예쁘게 보이려는 여심(女心)을 그대로 나타내 보인 작품이다. 화장을 예쁘게 하는 것도, 옷이며 장신구를 몸에 예쁘게 치장하는 것도 다 여성의 본능적이자 반사적인 표현 방법이다. 종장 처리의 기막힌 기법을 만나게 된다. ‘다음날 아침 왜 사람들은 부용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인인 화자만을 쳐다보는 것일까’하는 구절에서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부용이 연못 가득 나보다 더 예쁘다네, 제방 따라 걸었더니 부용꽃은 보지 않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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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으로 조선시대의 여류 문인이다. 김이양에게 의탁한 뒤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타며 여생을 보냈다. 우아한 천품과 재예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수창(酬唱)하였는데, 특히 김이양과 수창한 많은 시를 남겨 전한다.

【한자와 어구】

芙蓉花: 부용화(늦가을 서리 내릴 때 꽃이 피며 거상화(拒霜花)라고도 함). 發滿: 만발하게 피었다. 池紅: 연못이 붉다. 人道: 걷는 사람들. 勝: 낫다고 한다. 妾容: 내(자신의) 얼굴. // 朝日: 다음 날 아침. 妾從堤上: 내가 제방을 따라서. 過: 걷다. 如: 같다. 何人: 누구도. 不看: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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