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8) 소우(小雨)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8) 소우(小雨)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10.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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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걸어야 할 길 있어야 할 친구는 적고

발길 닿는 곳이 고향이요, 같이 앉아 막걸리 한 잔 기우는 사람마다 온통 친구라는 집시 인생을 생각한다. 모두는 고향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겠다. 꿈도 많았고, 추억도 깊숙이 서려있는 고향은 가고 싶은 곳이고, 만나고 싶은 선후배들이 있다. 그것이 외로운 인생길이었다면 더 말할 필요 있겠는가. 그것이 황혼의 인생 길목이었다면 더 말해 무엇을 하겠는가. 새벽꿈길 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小雨(소우) / 사가정 서거정

나그네 가는 길 아는 친구 거의 없고

외로운 인생길에 이별 또한 많았구나,

새벽꿈 연이을 때에 고향 향한 발길만.

逆旅少親舊           人生多別離

역려소친구           인생다별리

如何連曉夢           未有不歸時

여하연효몽           미유부귀시

 

나그네 걸어야 할 길 있어야 할 친구는 적고(小雨)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나그네 걸어야 할 길 있어야 할 친구는 적고 / 이래저래 인생길에는 서로 이별도 많구나 // 내 무슨 까닭이던가, 새벽녘에 꿈에 연이어 보이는 것은 /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은]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추적추적 보슬비는 내리는데]로 번역된다. 시인은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의 혹독한 비평가였던 매월당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정다감한 성격이 원만하기 때문에 숱한 사람들과 대화로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겠다.

한 나그네가 길을 걷고 있었다. 함께할 친구는 적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별 또한 많았다. 인생길에는 서로 이별도 많았음을 회고한다. 그런데도 이게 무슨 까닭인가.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꿈길의 안내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꿈에 고향을 향해 돌아가지 않는 적이 없었다는 자기도취에 취한 향수애(鄕愁愛)다.

그렇다. 고향은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다. 시적 화자는 이제 인생의 황혼 길에서 인생을 정리할 시기에 서있다. 벼슬도 정리하고 미련이 남아 아직도 못다 이룬 것이나 못가 본 곳도 찾아가야 한다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수구지심이라고 했듯이 만남과 이별이란 걸음 속에서 향하는 건 고향뿐임을 알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나그네 길 친구 적고 인생길엔 이별 많네, 무슨 까닭 새벽녘 꿈엔 고향에 갔었다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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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444년 급제하여 사재감직장에 제수되었다. 그 뒤 집현전박사, 경연사경을 역임하였고 1447년 홍문관 부수찬으로 지제교 겸 세자우정자로 승진하였다. 1451년(문종 1) 부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逆旅: 나그네,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손님이 묵는 집. 少: 적다. 親舊: 친구. [知人]을 뜻함. 人生: 사람이 살아감, 인생길. 多別離: 이별 또한 많다. // 如何: 무슨 까닭으로. 連曉夢: 새벽꿈이 연이어 오다. 未有: 일찍이 ~이 있지 않다. 不歸時: 돌아가지 않는 때가 없다.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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