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누정(2) 금사정(錦社亭)②
나주 누정(2) 금사정(錦社亭)②
  • 나천수 (사)호남지방문헌연구소 전문위원
  • 승인 2017.09.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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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는 호남지방문학을 꽃피우는 계기
▲ 금사정 모습

금사정은 하촌 나동륜이 금사정을 중수하고 쓴 상량문이 현재 금사정에 편액되어 걸려 있다. 상량문을 1869년에 지었으니 금사정 중수는 1869년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금사정 중수 상량문

상량문 내용에 보면, “우리 금사정은 곧 11현이 수계를 하던 터로 중종조의 기묘사화 때에 성균관의 유생들이 짚신에 지팡이 짚고 고향에서 소요하니 문장은 족히 난정(蘭亭)의 계회(禊會)라 부르고, 그림으로 그린 상(像)은 대지에서 아름답게 빛나니 어찌 오로지 낙사기영(洛社耆英)1)만이 아름답겠는가. 나간원(羅諫院)2)의 송심죽진(松心竹眞)의 시요, 박은대(朴銀臺)3)의 봉저란상(鳳翥鸞翔)4)의 필법이었네.(중략) 좋은 때에 풍류를 읊는 땅으로 시랑고대(侍郞古臺)보다 좋은 승지(勝地)를 가려 뽑았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시랑고대(侍郞古臺)는 기묘사화 때 낙향한 최초 11인현계 회원들이 지은 금강정이 있던 시랑대(侍郞臺)를 말한다. 오늘날로 보면 영모정과 시랑마을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묘사화 이후 탄생한 금강 11인현계의 맥을 이어오는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금강11인현계의 수계 활동을 알 수 있는 기록>

오늘날까지 11인현계 후손들이 전통을 이어, 금사정에 그 흔적을 남기고 보존하고 있다. 2012년에 금사정에서 현계회원들이 뜻을 모아 금강정 시비를 건립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호에서처럼 이유원의 ≪임하필기≫에서는 지은이를 알 수 없다 하였는데, ≪모효공문집≫이 발견되면서 정문손의 작품임이 확인된 것이다. 정문손의 시는 다음과 같다.

 

십년을 경영하여 서까래 몇 개로 집을 지으니                    十載經營屋數椽

금강 상류의 달뜨는 봉우리 앞이라네.                              錦江之上月峯前

이슬 젖은 복사꽃은 붉게 물에 떠있고                              桃花浥露紅浮水

버들개지 솜털은 바람에 날려 하얗게 배를 덮네.                 柳絮飄風白滿船

산 그림자 밖 좁은 자갈길로 스님은 돌아가고                     石逕歸僧山影外

안개 낀 모래밭가로 빗소리 나는데 백로는 졸고 있네.           烟砂眠鷺雨聲邊

만약 왕마힐(王摩詰)5)이 이곳을 유람하였더라면                若令摩詰遊於此

그 당시에 망천도(輞川圖)6)를 그리지 않았을 것을.             不必當年畵輞川

 

금사정의 동백나무를 어느 때 누가 심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밑 둥 줄기로 보면 2백여년쯤 되어 보인다. 그렇다면 나동륜 시대에 금사정을 중수한 기념식수가 아닐까?

동백꽃의 꽃말은 자랑, 겸손한 마음이다. 옛날에는 이를 산다화(山茶花)라 불렀으며, 다른 식물이 모두 지고 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에 세한지우(歲寒之友)로 심었는지,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 가르치기 위해 심었는지 모르지만, 동백나무는 노거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금사정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 정문손의 금강정 시는 빗돌에 새겨 금사정에 건립되었는데, 나간원 나창(羅諫院, 羅昶)이 지었다는 계축시(禊軸詩)는 언제나 빛을 보게 될까? 이 시는 다음과 같다.

 

열하고도 한 사람이 옛 고향에서 모였으니                               十有一人枌社舊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은 한송(寒松)과 죽청진(竹淸眞)이라네.      寒松心事竹淸眞

이 생의 영고성쇠는 누구에게나 먼저 오든, 나중에 오든 하지만    此生榮悴誰先後

봄날에만 흐드러지게 피는 도화 꽃만은 흉내 내지 마세.             莫學桃花爛作春

 

또한 ≪모효공문집≫에서 발견된 당악김씨 김두의 천진시(天眞詩)는 나간원의 시를 차운하여 쓴 듯 운이 진(眞), 춘(春)으로 동일한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선대 세대에서 사귄 정이 후손에게 미칠 것이니                       先世交情及後裔

지금 같은 좋은 일은 모두가 꾸밈이 없어야 하네.                     如今好事摠天眞

해마다 계의 모임을 어느 날에나 기약할까                              年年契會期何日

봄이 저물어 갔으니 중구일보다 더 나은 것이 없겠네.                莫過重陽在暮春

 

금사정을 계기로 기묘사화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금강11인현계의 전체 스토리를 2회에 걸쳐 전개해 보았다. 이처럼 당시 기묘사화를 계기로 많은 중앙 선비들이 낙향하였는데, 이러한 계기는 호남지방문학을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나주의 금강11인현계는 영산강 정자 문학을, 화순의 학포 양팽손도 기묘사화로 인해 화순의 정자문화를 꽃피웠던 것이 그 예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정자에는 이러한 아픈 역사의 숨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러한 만큼 사람들과 공유해야하지 않나 생각된다. 현재 금사정 내에 딱 한수 걸려있는 1974년에 나주 나정규(羅錠奎, 금강11인현계 회장)가 지은 시 한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숲 사이 이 정자는                                                  林間斯亭

선대의 높은 자취이네.                                            先世高躅

소나무와 대숲은 푸른빛이 어울리는데                        松篁交翠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더욱 희네.                                鷗鷺愈白

오랫동안 헐고 무너졌지만                                       多年頹圯

하루도 안 되어 고쳐지었네.                                     不日修築

뒷날에도 어진 이를 사모한다면                                羹墻後日

반드시 예를 갖추는데 망설이겠는가?                         戰兢必軾

▲ 나정규의 시

한편, (주)시민의소리와 (사)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담양군과 화순군에 이어 나주의 주요 누정 인 쌍계정, 석관정, 장춘정, 기오정, 영모정, 금사정, 만호정, 벽류정에 걸린 모든 현판을 탈초 및 번역하여 현판완역집 간행과 홍보 영상물 제작에 힘쓰고 있다.

1)낙사기영(洛社耆英) :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 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부필(富弼)의 집에서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을 ‘낙사기영회’라 한 고사를 비유한 것임.《宋史 卷313 文彦博列傳》

2)나간원(羅諫院) : 사간원(司諫院) 나창(羅昶)을 말함. 기묘사화 때 낙향하여 ‘十有一人枌社舊 寒松心事竹淸眞 世間榮悴誰先後 莫學桃花爛作春’ 라는 시를 지었다.

3)박은대(朴銀臺) : 박우(朴祐)(1476-1547년)은 김구, 김두와 처남매제간이다. 은대는 승정원의 별칭이다. 한성부 좌윤을 역임하였다. 박우가 당악김씨 집으로 장가와 처가살이 하면서 문과 급제하고, 그 아들 박순은 영의정이 되었다.

4)봉저란상(鳳翥鸞翔) : 난봉처럼 드날리다. 글씨를 평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5)왕마힐(王摩詰) : 王維를 말한다 摩詰은 字이다.

6)망천도(輞川圖) : 唐나라 왕유가 장안의 終南山 輞川 주변을 그린 산수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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