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6) 금야숙수가(今夜宿誰家)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6) 금야숙수가(今夜宿誰家)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9.20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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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는 누구의 집에서 묵어야 할꺼나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현장을 하나 꼽으라 하면 아마 단종의 폐위와 유폐 그리고 사약으로 인한 죽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비운에 죽어갔거나 인생의 허망을 느끼고 운둔 생활을 했던 생생함도 우리는 보아왔다. 유명을 달리한 사육신과 운둔으로 숨은 생육신이 그들이다. 그들은 모두 두 임금을 섬기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사육신의 한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 매죽헌 성삼문

북소리 목숨 재촉 석양 해는 기울고

저승길에 쉬어 갈 주막집 없다 하니

오늘밤 누구 집에서 하룻저녁 묵을까.

擊鼓催人命           夕陽日欲斜

격고최인명           석양일욕사

黃天無客店           今夜宿誰家

황천무객점           금야숙수가

 

오늘 밤에는 누구의 집에서 묵어야 할꺼나(今夜宿誰家)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북을 둥둥 쳐서 죄인된 사람의 목숨을 저리 재촉하니 / 붉게 물든 석양에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는구나 // 저승에는 주막집도 없다고 하는데 / 오늘밤에는 누구의 집에서 묵어야 할꺼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오늘밤은 누구 집에서 잘까]로 번역된다. 조선 5대 임금 문종이 승하하자 조정은 들끓기 시작했다. 다음 보위(寶位)를 이을 세자가 겨우 12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단종은 치마폭에 쌓였고 신하들 말에 우유부단했다. 영월 적소에 위리안치 되자 온 나라는 우왕좌왕했으니 사육신과 생육신이 사생결단을 했다. 성삼문은 사육신으로 불사이군이 아닌 죽음을 선택하며 ‘인생무상’이란 시 한 편을 남긴다.

시인의 살아서 비열함을 보이기보다는 죽어서 소신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기구(起句)에서 북을 친다는 것은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이지만 시인은 사형이 임박했음을 음영했고, 승구(承句)에서 석양에 해가 기운다는 것은 그래서 목숨이 다해가고 있다는 사실적인 내용으로 표현했다.

화자는 이어지는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서 시적 자아의 기막힌 심회를 또 한 번 만나게 된다. 저승 가는 길에는 주막이 없다는데, 이 목숨 끊어지면 누구의 집에는 하룻저녁을 편히 쉴 것인가라고 한탄한다. 이승에서의 편했던 잠자리와 저승에서의 편할 것으로 예상되는 잠자리를 동격으로 생각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목숨 재촉 북이 둥둥 석양 해는 뉘엿뉘엿, 저승엔 주막도 없는데 오늘 밤은 누구 집에서’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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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무신 유응부와 더불어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1435년(세종 1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38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42년 박팽년, 신숙주, 하위지, 이석정 등과 삼각산 진관사에서 사가독서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擊鼓: 북을 치다. 북을 잡고 둥둥 치다. 催: 재촉하다, 막다. 人命: 사람 목숨. 欲斜: 비끼고자 하다. // 黃天: 1) 사람이 죽은 다음 그 혼이 가서 산다는 세상, 2) 크고 넓은 하늘. 客店: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음식을 사 먹고 머무는 집. 흔히 [주점]이라고 함. 今夜: 오늘 밤. 宿: 잠자다. 誰家: 누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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