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백호 임제를 재평가한다(2)
길 위의 호남 선비, 백호 임제를 재평가한다(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9.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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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백호문학관 입구의 ‘무어별’ 시 부조 바로 옆에는 ‘적토마’ 부조가 있다.

그 앞에는 설명문이 있다.

이 말의 조각은 백호의 부친인 절도사 진(晉)께서 성인이 된 기념으로 주신 적토마의 형상이다. 백호 선생은 평생 주유천하 할 때나 변새(邊塞) 관직에 있을 때도 애마(愛馬) · 거문고 · 장검 · 옥통소와 함께 하였다.

상설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전시물이 2015년에 본 것과 많이 다르다. 2017년 4월에 새로 단장하여 확 바뀐 것이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이 “취하면 노래하고, 깨면 비웃으니 세상이 싫어하네. - 백호 임제 <이 사람 有人>” 라고 적힌 시이다.

▲ 상설전시관 입구

이 시의 원문은 이렇다.

이 사람 (有人)

우주 간에 늠름한 육척의 사나이

취하면 노래하고, 깨면 비웃으니 세상이 싫어하네. 1)

마음은 어리석어 육운(陸雲)의 병 면하기 어렵고

지모는 졸렬하여 원헌(原憲)의 가난도 사양치 않아.

풍진 속 벼슬살이야 잠깐 동안 굽힘이니

강해(江海)의 갈매기와 누가 잘 어울릴까

나그네 빈 방에는 밤마다 고향 꿈

다호(茶戶)며 어촌으로 옛 이웃들 찾아간다오.

임제의 내면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있는 시이다.

이윽고 임제의 소설 『화사』 · 『수성지』 · 『원생몽유록』을 소개한 편액을 지나니 ‘성이현과 작별하며’ 시판이 있다.

留別 成而顯

出言世謂狂

緘口世云癡

所以掉頭去

豈無知者知

말 뱉으면 세상이 나더러 미치광이라 하고

입 다물면 세상이 나를 바보라 하네.

그래서 고개 저으며 떠나가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가 어찌 없으랴.

▲ ‘성이현과 작별하며’ 시판

백호는 세상과 불화(不和)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임제를 미친 사람(狂人)이라 하고 바보 천치(天癡)라 했다. 임제가 1576년에 지은 ‘면앙정부(俛仰亭賦)’에도 “남의 비웃음을 사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광인이라 하네.’란 글귀가 나온다. 2)

이어서 ‘임제(1549-1587)’라고 적힌 편액을 보았다.

여기에는 “백호 임제는 기질이 호방하고 예속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비판하는 정신을 지녀 풍류기남아(風流奇男兒)라 일컬어졌다.” 라고 적혀 있다. 이익, 이항복과 신흠의 평도 적혀있다.

허균도 ‘학산초담’에서 임제를 이렇게 평가했다.

임제의 자는 자순(子順)이니 나주인이다. 정축년(1577, 선조 10)에 진사가 되었다. 본성이 의협심이 있고 얽매이질 않아서 세속과 맞지 않았으므로 불우했고 일찍 죽었다.

한편, 백호의 외손자 미수 허목(1595∼1682)은 묘비명에 ‘당시는 동서분당의 의론이 일어나 선비들은 명예로 다투고 서로 추켜세우고 이끌어 주고 하였다. 그런데 임제는 자유분방하여 무리에서 초탈한 데다 굽혀서 남을 섬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랬다. 임제는 동인 · 서인 어느 정파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붕당에 비판적인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연암집』 「낭환집서(蜋丸集序)」에 일화가 있다.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말을 타려고 하자 하인이 나서서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 하니, 백호가 꾸짖었다.

“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하였다.

이를 통해 논하건대, 천하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는데도 보는 방향이 다르면 그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는지 짚신을 신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

1) ‘취하면 노래하고, 깨면 비웃으니 세상이 싫어하네.’의 원문은 ‘醉歌醒謔世爭嗔’이다. 이 원문은 ‘취하면 노래하고, 깨면 희학하니 세상이 다투고 진노하네.’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2) 송순(1493∼1582)은 향리인 담양에 면앙정을 짓고 스스로 ‘면앙정가’를 지었으며, 고봉 기대승에게 ‘면앙정기’를 백호 임제에게 ‘면앙정부’를 지어주도록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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