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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고문  |  siminsor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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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4  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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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365일 한가위만 같으라’하는 어림없는 소망을 내뱉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있어왔다. 어려운 일상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천고마비의 호시절을 맞아 추수의 시점에서 그 풍요가 기뻐 내뱉는 말씀들이다. 살충제 달걀이다, 고물가다 하는 것들이 시정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지만, 북핵이다, 사드다 하는 재앙들이 겹겹이 쌓이는 현실에서 당연히 엄습할 것 같은 불안들을 우리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성 싶다. 실감해보았자 스스로들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마당에 구태여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생활의 지혜가 우리를 이렇게 의연하고 의젓한 사람들로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삶들이 신통하기도 하면서 우리들의 무력감이 서럽기도 하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이 난국을 과감히 해쳐나갈 방법이 없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면서 투정하고 질책하는 언사를 농하지만 약소국의 수장, 분단국가의 대통령의 한계와 무력감이 지도자 탓만 할 수 없는 비애로 촌로의 가슴을 적신다. 백마 타고 홀연히 나타나는 옛 용사를 꿈꿔보지만 옛 시인의 안타까운 절규에 불과했음에 다시 망연자실해진다. 그러나 비상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야하는 사람들은 좋은 일들이 생기기를 바라고 의인들을 기다린다. 좋은 일은 결국 좋은 사람들이 만들고 이루는 것으로, 누가 좋은 사람일까, 누가 의인일까를 가늠해 본다.

청사에 빛나는 의사, 열사들의 면면들이 파노라마처럼 겹친다. 빛나는 그분들의 살신성인이 가슴에 와 닿지만 삶은 모두가 살신성인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역사 속에 묻힌 이름 없는 별들을 제외하고도 살신성인하지 않았지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 차선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우리들은 기억한다. 오늘의 광주가 있기까지 싸워서 광주를 지탱해온 영령들 외에도 민생의 전선에서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학문예술 부문에서 애쓴 많은 분들의 족적을 기억한다. 물론 광주의 위신과 의기를 훼손하고 꺾으면서 억압의 사슬을 들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 동분서주했던 에너지들은 기억해야 할 좋은 사람들에서 제외함은 당연하다.

좋은 사람들은 오늘에만 있고 광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있는 모든 곳에 인간의 삶을 북돋는 힘으로 연면하여 우리들은 단군의 가르침인 홍익인간을 기억한다. 망국의 일제하에서 의사, 열사로 청사에 그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민족과 민생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한 선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얼마 전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하바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부동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 전공 교수를 맡고 있는 김경민 박사다.

그가 말하는 건축왕은 정세권으로, 그는 일제하에서 북촌 익선동,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건설하여 경성을 뒤바꾼 부동산개발업자로 조선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였다.

저자 김경민의 소개에 의하면 ‘정세권의 경성개발은 토지를 매입해 대단위 부동산개발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도시개발과 주택공급을 담당하는 근대적 디벨로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서울의 강남개발이나 신도시 뉴타운 개발에 비견될 만큼 근대 경성의 부동산지도를 재편했다. 정세권은 전통한옥에 근대적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개량한옥을 대량 공급하며, 조선인의 주거지를 확보하고 조선인의 주거문화를 일대 개선한 혁신가였다. 또 부동산개발로 자수성가한 식민지의 민족자본가로서 물산장려운동과 조선어학회운동의 재정을 담당하며 일제에 맞선 민족운동가였다.

거의 일세기 전에 살았던 부동산업자를 만나는 경험도 특별할 뿐만 아니라 일제하에서 그러한 큰 사업가가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조선어학회운동의 재정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필자의 감명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저자 김경민에 의해서 윤색되고 부풀려졌을 가능성까지를 염두에 두면서, 민족운동의 재정을 담당하였다는 증거들을 검토하였던 바, 날조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군색한 확인작업은 건축왕 정세권과 함께 민족운동을 했다는 안재홍과 이극로의 적극적 증언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재홍과 이극로의 일생에서 차지하는 물산장려운동과 조선어학회운동의 재정활동과 그 비중이 크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고 한용운 시인의 증언과 당시의 신문기사를 통해서 그가 민족운동의 재정문제에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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