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지시
대통령의 지시
  • 문틈 시인
  • 승인 2017.09.1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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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사회의 각 분야들이 정신 못 차리게 변하고 있다. 원전을 없애라, 최저 시급을 1만원까지 올려라,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해라, 노인들에게 생활지급금을 25만원으로 인상하라, 군인에게 월급을 대폭 올려 주어라, 청년 일자리 81만 개를 정부에서 만들어라 등등.

대통령 취임 100여 일 동안에 눈이 픽 픽 돌도록 대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잘한다’ ‘옳소’,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10년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분이다. 국정 지지도가 75퍼센트를 오르내린다. 박수 소리는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이 정도는 단지 맛보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앞으로 4년 8개월 동안에 집행할 국정 100대 과제가 실현되면 우리나라는 천지개벽하는 듯 달라진 세상이 될 것이다. 병역은 1년 6개월만 복무하면 되고, 아동수당 월 10만원씩 받게 되고, 휴대폰 요금도 내리고. 또, 또 ….

과거의 적폐들도 일소된다. 인사비리, 사건비리, 뇌물, 정격유착, 권력남용 같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왔던 과거의 온갖 부정부패를 모두 파헤쳐 숙정하는 일도 잰 걸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상시로 일어나는 ‘갑질’이 퇴치된다. 특히 대기업의 횡포나 몰아주기도 근절되고 세금도 훨씬 더 많이 물린다.

고대하던 평등세상이 올 것 같다. 갑자기 너무 많은 것들을 부수고 새로 만드니까 일부 보수층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악취 나는 나라를 소독하고 청소해서 깨끗한 나라를 만들자는데 겁먹을 이유가 없다.

내년에 헌법이 개정되면 우리나라는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 공화국’으로 재건축될 것이라고 한다. 벌써 정치 지망생들은 기대 만발이다. 우리는 과거에 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의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거침없이 일사천리로 정책을 실현해가는 국정 운영을 보고 있노라니 달라질 나라의 가까운 미래가 금방 현실이 될 것만 같다.

지금 국면에서 야당은 국회에 의석수만 많이 있지 사실상 거의 존재감이 없어진 상태나 진배없다. 정부가 하도 잘 나가서다. 야당이 의석수는 여당보다 많아 사안에 따라 힘을 쓰기는 하겠지만 지금 분위기로 보아서는 그마저도 시한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대안을 내놓고 반대논리로 맞서는 대신 하는 일들이 정쟁으로밖에 비치지 않는 듯하다.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업고 새 정부는 ‘적폐청산’과 ‘사람 사는 세상’ 만들기 깃발을 들고 질주하고 있다. 새 정부의 질풍노도에 모두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부 정책이 이렇게 마구 내달려도 괜찮을까, 하는 기우도 없지 않다. 그럴 것이 새 정부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하는 이런 일들이 이렇게도 쉽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아서다. 왜냐고?

이렇게 밀어붙이면 될 일을 가지고 과거 역대 정부는 왜 못했을까,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어서다. 진즉 이런 정책들을 실행했더라면 그 대통령들도 높은 지지를 받으며 신나게 일을 벌려 지금쯤은 정말 크게 달라진 나라가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역대 정부는 어찌하여 원전을 없앨 생각을 하지 않고 더 건설하려고 했으며, 수많은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할 생각을 못했으며, 최저임금을 크게 올려줄 방안을 내놓지 못했으며, 병역 복무 기간을 1년 6개월로 더 단축시킬 묘안을 고안하지 못했는가 말이다.

대통령이 명령 한 마디만 내리면 척, 척, 해낼 수 있는 일들을 왜 못했는지.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부동산 투기를 없앨 강력한 대책을 이 정부는 시장에 내놓아 투기 따윈 더 이상 엄두도 못 내게 뚝딱 해치웠는데 역대 정부는 왜 이렇게 할 수 있는 대책을 못 내놓았는가싶다.

대통령이 결심하면 정부는 즉각 하는 것을 보라. 역대 대통령들이 이런 일을 못한 것은 혹시 이것저것 속내를 따져보다가 답이 안 나와 그랬지 않았을까. 아니면, 기득권의 저항이 너무 커서 밀린 탓에 못하고 만 것이었을까.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못했을까. 나는 정작 이 부분이 아리송하다.

아무튼 새 정부가 시원시원하게 밀고 가는 모습이 통쾌하다. 대통령의 지시 한 번이면 될 것을 가지고 그동안 손을 못 대고 ‘적폐’만 쌓아온 역대 정부는 그런 점에서 무능한 정부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쪽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제2의 세종대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정치 9단들도 못한 일들을 쾌도난마처럼 속전속결로 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대통령의 결심 하나로 없애고, 올리고, 줄이고, 숙정하는 나라 일들이 아무런 이의나 반대도 없이 이렇게 거침없이 해나가도 괜찮은 것일까.

옛날 전제 군주들도 옆에서 ‘아니 되옵니다’하는 전담 신하가 있어 임금이 무슨 큰일을 할 때면 반대논리를 들이댔다는데(세종대왕도 한글창제 시 그랬다) 일사분란하게 밀어재끼는 모습이 나같은 소심쟁이에게는 왠지 조마조마하다. 박수를 치는 한 편으로 국민 모두가 긴장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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