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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호남 선비, 백호 임제를 재평가한다(1)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siminsor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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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2  09: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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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백호 임제(林悌 1549 명종 4년∼1587 선조 20년)를 만나러 전남 나주시를 간다. 먼저 가는 곳은 다시면 회진리에 있는 백호문학관이다. 차 안에서 2006년에 쓴 졸저 『남도문화의 향기에 취하여』의 ‘조선적인 가장 조선적인 풍류객, 백호 임제’를 다시 읽는다.

39세에 요절한 조선시대 최고의 풍류객 백호 임제. 그는 35세 때 평안도 도사로 부임하러 평양으로 가는 길에 명기(名妓) 황진이를 만나러 송도(지금의 개성)을 들렀는데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임제는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황진이 묘에 들러 관복을 입은 채로 술잔을 올리고 추도시를 읊었다. 1)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 광주 사직공원에 있는 임제의 황진이 추도시

양반 신분에 천민인 기생의 무덤 앞에서 예를 갖추었으니 얼마나 진보적인 로맨티스트인가?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조정으로부터 비방을 받았다. 2)

로맨티스트 임제의 인생살이는 기생과의 일화가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평양기생 한우(寒雨)와의 사랑이다.

한우는 가야금 잘 타고 시에 능한 콧대 높은 평양기생이었다. 그런 한우를 백호는 다음 시를 지어 꼬신다.

북천(北天)이 맑다거늘 우장(雨裝)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느니 얼어 잘까 하노라

여기에서 찬비는 한우(寒雨)의 한글 이름이다. 시에는 혼자 웅크리고 자야 하는 신세가 은근히 표현되고 있다.

백호의 시에 기생 한우도 화답한다.

어이 얼어 잘이 므스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한우는 백호에게 정담(情談)을 보낸다. 그리고 이들은 하룻밤을 잤다한다. 일설에 의하면 한우가 백호에게 푹 빠져서 함께 살자고 했지만 백호가 뿌리쳤다 한다.

평안도 도사 시절에 백호는 기생의 죽음을 애도 하는 시를 지었다.

기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妓挽

제1수

곱고 고운 자태가 평양성에서도 빼어나  艶艶箕都秀

두 눈썹이 먼 산처럼 가느다랗지.        雙蛾遠岫微

열매 맺을 인연이 없었던 꽃              不緣花結子

옥 같은 허리가 어찌 여위어졌나.        那有玉鎖圍

제2수

세상 자취 화장하던 거울에 남고         世事餘粧鏡

춤추던 옷엔 먼지만 날리네.              流塵暗舞衣

꽃다운 넋은 어디로 떠나갔나.            春魂托何處

강버들에 제비는 돌아오건만.             江柳燕初歸

김소월의 시도 이만할까. 그 섬세함이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다.

이윽고 백호기념관에 도착하였다. 백호기념관 입구 한 곳에는 무어별 시와 적토마 부조가 있다. 먼저 무어별 시부터 살펴본다.

無語別         수줍어서 말 못하고

十五越溪女    열다섯 살 아리따운 아가씨

羞人無語別    수줍어서 말 못하고 이별이러니

歸來掩重門    돌아와 겹문을 꼭꼭 닫고선

泣向梨花月    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임과 헤어지는 15살 소녀의 애틋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시중유화(詩中有畵). 수줍은 15살 아가씨, 겹문이 있는 집 한 채, 배꽃, 달, 흐르는 눈물.

여인의 심리와 자태를 잘 묘사한 이 시는 허균의 학산초담(鶴山樵談)에 규원시(閨怨詩)로 소개되었고, 최근에 연극 무어별에서도 나왔다.

   
▲ 백호문학관 입구에 있는 무어별 시 부조

1) 유몽인이 지은 『어우야담』과 이덕형의 『송도기이(松都記異)「에 수록되어 있다. 이덕형의 『송도기이』에 실린 글이다.

사문(斯文) 임제는 호걸스러운 선비이다. 일찍이 평안도 평사(評事)가 되어 송도를 지나다가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글을 지어 진이(眞伊)의 묘에 제사지냈는데, 그 글이 호방하여 지금까지 전해오면서 외워지고 있다.

임제는 일찍이 문재(文才)가 있고 협기(俠氣)가 있으며 남을 깔보는 성질이 있으므로, 마침내 예법을 아는 선비들에게 미움을 받아 벼슬이 겨우 정랑(正郞)에 이르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일찍 죽었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랴? 애석한 일이다.

2) 일설에는 임제가 황진이 묘에 제를 올렸다고 하여 조정으로부터 파직 당했다고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임제는 1583년부터 1584년까지 평안도 도사를 하였다.

『어우야담』에는 ‘임제가 평안도사가 되어 송도를 지나면서 진이의 묘에 축문을 지어 제사지냈다가 끝내 비방을 입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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