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5) 야좌차두시운(夜坐次杜詩韻)[2]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5) 야좌차두시운(夜坐次杜詩韻)[2]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9.1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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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답답하나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2]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을 한다. 군에 다녀 온 사람들의 군번 대한 이야기는 졸병 때의 이야기보다는 이른바 ‘고참’ 때의 이야기인 ‘자기 자랑’의 일색이 된다. 모든 것이 내가 지내온 과정이자 큰 추억거리다.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의 제1의 자랑은 누구누구는 ‘내 밑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구수함을 더한다.

시인은 밤을 지새웠던 모양이다. 답답함도 없고 마음에 근심도 없으니 옛 사람의 시에 차운하여 자기 처지를 비교해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夜坐次杜詩韻(야좌차두시운)[2] / 유항 한수

연기 냄새 식으니 향불은 꺼져가고

창문이 환하여 둥근 달은 오르는데

마음속 답답하여서 옛사람이 답하네.

篆冷香殘後             窓明月上時

전냉향잔후             창명월상시

有懷無與晤             聊和古人詩

유회무여오             료화고인시

 

마음 속 답답하나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夜坐次杜詩韻2)로 제목을 붙여보는 율의 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유항(柳巷) 한수(韓修:1333~1384)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연기 냄새 식어가니 향불은 점차 꺼지고 / 창문이 환해지면서 둥근 달이 떠오르네 // 마음 속 답답하나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 / 애오라지, 옛 사람의 시에 응대하며 답이나 해보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밤에 두보의 운에 맞춰 시짓다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오늘도 또 날이 저물어가고 / 무심한 백년 세월 참으로 슬프구려 // 마음먹은 대로 일은 되지 않고 / 몸이 늙어 병마저 따라서 생겼다네]라고 하면서 공명을 부러워하지 않겠다고 쏟아냈다. 시를 지으면서 부운과 같은 세상의 공명을 부러워하지 않겠다고 했다.

시인은 젊어서 자기 몸이 아니듯이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무언가는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연기 냄새 식어가니 향불은 점차 꺼져가고, 창문이 환해지면서 둥근 달이 떠오른다고 했다. 자연과 벗하면서 살고 싶다는 자기 의지를 보인다. 향불이 꺼지는 것과 창문이 환해지는 둥근 달이 떠오른 것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몸이 늙어 식어간다는 뜻도 내포하게 된다.

화자가 하고 싶은 건 딱 한 가지만 남는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옛 시인의 시에 응대하는 일, 그것뿐이다. 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시를 읽고 감상하면서 운자에 차운하면서 시를 짓는 일에 몰입하는 작가적 태도를 갖겠다는 것이리니. 이것이 깊은 시상에 의해 시가 되는 실례가 아닐까.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연기 냄새 향불 식고 둥근 달이 환히 뜨네, 마음 함께 할 사람 없고 옛 시에 응답해 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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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유항(柳巷) 한수(韓脩:1333~1384)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한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평간공 한공의이며, 중찬 한악이 할아버지이다. 지행이 고결하고 식견이 탁월하였다. 작품에 <유항시집>이 있고, 노국 대장 공주 묘비, 안심사 사리탑비에 그의 필적이 전한다.

【한자와 어구】

篆冷: 연기 냄새가 사라지다. 香殘: 향불이 꺼지다. 後: ~한 후에. 窓明: 창문이 환해지다. 月上時: 달이 떠오를 때에. // 有懷: 마음에 회포가 있다. 無與晤: 더불어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다. 聊: 애오라지. 어세를 높이는 조사. 和: 화답하다. 응대하다. 古人詩: 옛사람의 시. 고인의 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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