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우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8.3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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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풀벌레 우는 소리로 밤이면 집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날마다 비가 쏟아지더니 어디서인지 맹꽁이 떼도 나타나 큰 소리로 울어댄다. 비가 퍼붓는 날이 계속되더니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흘러가는 개천에 물이 불어나 맹꽁이들이 모여들어 제 세상 만난 듯 시끄럽게 울어쌓는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크게 더 크게 울어댄다.

자정이 넘어도 그치지 않는다. 그 소리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맹꽁이 우는 소리만이 아니다. 개천 건너 검은 숲에서는 풀벌레 우는 소리도 자글자글하다. 풀벌레 소리는 맹꽁이 소리에 가려 작은 소리로 들리지만 짧고 굵고 긴 소리들이 이리 저리 섞여들어 온 숲에 깔려 있다.

맹꽁이 소리는 우렁차고 풀벌레 소리는 비단을 짜는 소리처럼 들린다. 흡사 소리의 보석들을 자잘하게 흩어놓은 것 같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맹꽁이 소리, 풀벌레 소리들을 함지박에 주워 담아 놓고 싶다. 그래놓고 언제든지 듣고 싶은 때 듣고 싶다. 이제 가을인 데도 여름밤에 듣는 온갖 풀벌레, 맹꽁이 소리들로 귀가 환하다.

도시에 살게 된 이후 모처럼 청량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느낌이다. 시골에서 살 적에는 풀벌레 소리나 개구리, 맹꽁이 소리를 늘 듣고 살았는데 아파트라는 괴물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자연의 소리와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가 새 아파트에서 저런 소리들을 들으니 마음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농담삼아 지인에게 “풀벌레 소리 때문에 어젯밤엔 잠을 못 잤다니까.” 했더니 그는 정색을 하고 “그럼 야단인데.” 한다. 실은 ‘아파트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조용한 곳인가’ 하는 뜻으로 새로 이사 간 집이 시골 분위기 난다는 것을 에둘러 이야기한 것인데 농담이 빛을 못보고 말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음에 민감해져 이사를 2년 동안에 세 번이나 하게 되었다. 마침내 소음이 덜한 곳을 찾아 고단한 짐을 풀었다. 바람소리, 빗소리, 풀벌레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고요를 더욱 고요롭게 하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는 이사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요즘 사람들은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을 보기도 어렵고, 더더구나 풀벌레 소리도 잊은 지 오래다. 도시는 소음으로 건축되었다. 늘 소음에 시달리며 사는 것이 도시인의 일상이다. 생각해보면 소음이 없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싶다. 어디를 가나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다.

10년도 더 전 평양에 갔을 때 칠흑처럼 캄캄한 밤하늘, 고요로 가득 찬 도시의 밤이 인상적이었다. 고요가 만조를 이룬 것 같은 그 캄캄한 밤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밤이 되면 하늘을 나는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듯 시끄러움에서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이 땅은 밤낮으로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보통 밤 아홉시가 훨씬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 세계의 대도시는 어디나 다 마찬가지라고 한다. 밤에 불빛이 얼마나 밝게 빛나는 도시냐에 따라 세계적인 도시로 꼽힌다.

글쎄다. 인공 불빛 아래서 자연을 멀리하는 생활을 국제도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진 것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싶다.

요 며칠 거의 날마다 폭우가 쏟아진 덕에 하늘은 밤중에도 참 맑다. 깊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풀벌레 소리까지 듣게 되니 호강하는 느낌이다. 모든 도시 사람들이 풀벌레 소리를 듣고 산다면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아 정서적으로 한결 여유롭고 남에게 배려를 베푸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들려 하는데 창으로 여름밤 하늘이 내다보였다. 하늘에는 초승달과 별 하나가 짝하여 떠 있었다. 날카롭게 구부러진 초승달, 그리고 그 옆에서 달을 보초서는 듯 반짝이는 별 하나. 모처럼 맑게 씻긴 하늘에 나타난 선명한 달과 별 하나의 모양이 그 옛날의 동심으로 데려간다.

달 옆에 떠 있는 별은 필시 금성일 것이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베드윈족이라도 된 것처럼 한참을 여름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밤 하늘은 얼마나 깊고 푸른지, 커다란 궁륭(穹窿)이 차일처럼 쳐져 있는 하늘은 또 얼마나 신비스러운지.

새벽에 일어나 보니 초승달과 별은 보이지 않았다. 밤 공연을 마치고 그것들 둘은 다른 하늘로 옮겨 간 것이리라. 하늘의 일은 모를 속이지만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밤새워 여전히 비단을 짜고 있다.

창을 여니 들이닥치는 새벽 공기가 차갑다. 그새 여름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낮에는 한여름처럼 덥다.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더운 여름이었어.”라고 사람들은 여름 후기를 말한다. 아니다. 여름은 해마다 가장 더운 여름처럼 느껴진다.

아파트 주민들이 간밤에 맹꽁이 때문에 잠을 설쳤다며 구청에 민원을 냈다고 한다. 이런, 자연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니. 이 사람들은 풀벌레 소리도, 맹꽁이 소리도, 달도, 별도 스마트폰으로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자연을 느끼는가보다. 구청에서 맹꽁이들을 어떻게 했는지 따위는 알아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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