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미암일기’를 남긴 유희춘(6)
길 위의 호남 선비, ‘미암일기’를 남긴 유희춘(6)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8.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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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569년(선조 2년) 6월23일의 『미암일기』에는 송덕봉의 병치레가 기재되어 있다. 관련부분을 살펴보자 1)

o 부인이 설종(舌腫)을 얻어 여의(女醫)를 불렀다.

o 노의녀(老醫女) 사랑비가 와서 부인의 백회열에 침을 놓아 피를 뺐다.

o 허준이 부름을 받고 와서 설종 병을 논의하고 갔다.

o 부인이 설종 때문에 온 몸에 열이 나서 밤 2경(9시-11시)에 딸자식이 웅담을 드리니 열이 조금 내렸다.

o 밤에 경련이 나와 함께 안방에서 잤다. 부인이 의녀들을 데리고 자기 때문이다.

o 딸이 부인을 위하여 무녀(巫女)를 청하려 하자, 부인이 허락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목구멍의 병증이 분명한데 무당의 제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결단코 청해서는 안 된다.”하였다. 부인의 현명한 판단(明斷)이 이와 같았다.

송덕봉은 6월 하순에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6월20일에는 풍기로 팔뚝이 아픈 증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23일에는 입안이 통통 부어오르고 목구멍이 아파오는 설종(舌腫)이 생겼다.

유희춘은 의녀(醫女)를 불렀다. 의녀는 본디 관노비로서 특별히 의술을 익힌 여자 의원이었다. 관청에 소속되었지만 틈나는 대로 벼슬아치나 양반 등을 챙겨주며 부수입을 올렸다.

이윽고 노의녀(老醫女) 사랑비가 도착했다. 『미암일기』에 ‘노의녀’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사랑비는 나이도 많고 노련한 의녀였다. 2)

의녀 사랑비는 덕봉을 진맥하고 나서 백회열(정수리의 솟구멍 자리)에 침을 놓아 피를 뺐다.

조금 있다가 허준이 부름을 받고 와서 덕봉의 설종 병을 논의하고 돌아갔다.

허준이라면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의 저자인 의성 (醫聖) 구암 허준 아닌가. 허준이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에 처음 기록된 것은 1575년 2월15일인데, 『미암일기』에는 이보다 6년 전인 1569년에 허준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날 밤 2경(9시-11시)에 덕봉은 온 몸에 열이 나는 증세를 보였다. 내내 덕봉 곁을 지키고 있던 딸은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딸이 굿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무녀를 청하려 하자, 덕봉은 단호하게 “목구멍의 병증이 분명한데 무당의 굿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결단코 청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다행히도 덕봉은 의녀의 처방에 따라 웅담을 먹고 열이 조금 내렸다.

그날 밤 내내 의녀들은 덕봉을 지켰고, 다음 날 덕봉의 병이 나아졌다.

한편, 6월29일자 『미암일기』에는 미암의 병치레가 적혀 있다.

내가 어제부터 얼굴의 좌측에 종기가 생겨 허준의 말을 듣고 지렁이의 즙을 발랐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허준은 미암 집안의 주치의나 다름없었다.

미암은 그것에 보답하여 윤 6월3일에 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해준다.

윤 6월3일자 『미암일기』를 보자.

허준을 위하여 이조판서(당시 이조판서는 홍담)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의원으로 천거해준 것이다. (爲許浚, 通簡于吏判, 乃薦于內醫院也)

허준은 미암의 추천에 의해 내의원(궁중의 의약을 맡는 관청)에 특채된 것이다. 3)

그런데 허준이 의과에 급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이는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1990년)』과 mbc 드라마 『허준(2000년)』이 너무나 유명하여 대중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4)

▲ 미암 박물관의 미암 연보

1) 출처 : 미암일기 제2집(1569.5∼1570.12), 사단법인 담양향토문화연구회, 1993

2) 1569년 6월1일자 『미암일기』 추기(追記)에는 “어제 사인(舍人) 사호골(司虎骨: 호랑이 뼈를 맡은 사람)이 와서 뼈를 갈아 가루로 만들어줘 술에 타서 마셨다. 이것이 신경통을 다스린다고 한다. 이는 부인이 노의녀 사랑비의 말을 듣고 나에게 먹으라고 권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3)허준이 내의원에 추천된 이후인 1569년 7월2일의 『미암일기』에는 “허준이 와서 인사를 하기에 宋四宰(송순)의 병을 가보게 했다.”란 기록이 있다. 담양 출신 송순(1493∼1582)은 면앙정 주인이다.

4) 허준의 일생은 미스터리이다. 출생연도와 출생지, 모친, 스승이 불확실하고 각자 다르다. 예를 들면 허준의 출생연도는 1537년, 1539년, 1546년으로 각각 인데, 1539년이 정설이다. (김호, 허준-조선의학의 완성,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인물열전 2, P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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